사회 사회일반

"돈되는 내용만" 영화계 획일화 우려 높아

대형 투자·배급사 영화 독식 갈수록 심화<br>"창작집단과 상생해야" 목소리 커져

올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의 극장 상영 시간표. 서울 삼성동의 'M' 멀티플렉스 영화관에는 29일 개봉한 심형래의 '라스트 갓파더'는 하루동안 26회 상영이 예정돼 있다. 구의동의 'C'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사정은 비슷해 하루 17회 상영된다. 이 작품은 대형 투자ㆍ배급사가 투자와 배급을 맡은 작품들이다. 이들 극장에서 '라스트…'와 같은 날 개봉하는 '카페 느와르'나 예술영화 '클라라' 등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올해 최다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순위에 따르면 톱 10 가운데 6편이 CJ엔터테인먼트 가 투자ㆍ배급을 맡은 작품이었다. 한국 영화 부흥기였던 2004년만 해도 한 배급사의 독식체제가 아니라 10위권 내에 3~4 업체가 포진했고 투자ㆍ배급사가 아닌 영화 제작사 배급 작품도 고루 있었다. 그러나 대기업이 투자ㆍ배급을 맡은 영화가 스크린을 장악하면서 한국 영화계의 '획일화' 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이 투자와 배급을 도맡는 '수직계열화' 문제는 영화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온 사안이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게 영화계 안팎의 지적이다. 최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주재로 열린 영화인 간담회에서도 영화의 투자ㆍ배급이 분리돼야 한다는 영화인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추격자'를 제작한 영화사 비단길의 김수진 대표는 "대기업의 투자 기준이 엔터테인먼트에 치우쳐 있다 보니 작품이 획일화되고 있다"며 "미국처럼 투자ㆍ배급ㆍ극장이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사 투자 영화를 극장에 대규모로 개봉하다 보니 대기업 중심의 영화판 구도가 형성돼 영화계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영화계 키워드로 꼽히는 '잔혹 스릴러' 열풍도 이 같은 흐름의 결과라는 의견이 많다. 새해벽두부터 '용서는 없다'로 시작된 잔혹 스릴러 행진은 '파괴된 사나이', '이끼',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황해'로 연말까지 이어졌다. 돈 되는 영화만 투자하다 보니 비슷한 영화에 투자가 집중된 것. 영화계의 획일화를 막기 위해서는 작가ㆍ감독ㆍ제작자 등 창작자와 상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애의 목적'의 각본을 쓴 고윤희 작가는 "영화계가 산업적으로 성장하고 있을 지는 몰라도 질적으로는 퇴행하고 있다" 며 "영화계가 크리에이티브한 환경을 조성하지 못해 창작집단이 영화판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영화사 대표도 "대기업 투자 작품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유통 시장을 장악하니 잘 될 수 밖에 없다"며 "영화 제작사들은 대기업의 입맛에 맞는 영화만 만들게 되고 이런 종속관계는 영화계 발전을 가로막는다" 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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