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01> 표현의 자유, 규제의 의무


예술은 자유로운 것이다. 예술이 항상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순수 예술이 통치자와 기득권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일반인들의 마음을 거북하게 하기도 한다. 또 우리 안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거나 익숙한 풍경과 장면들을 낯설게 함으로써 비판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 때문에 70년대 말부터 유럽과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일부러 사옥 안에 현대 미술 작품을 많이 비치했다고 한다. 자칫 숫자에 매몰될 수 있는 금융인들이 가끔은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이미지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조직 혁신을 위한 시도가 아닌가 싶다.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언제나 보장받을 필요가 있는 가치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 37조 2항은 이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분단 이후 60년이 넘게 정전(停戰)중인 특수 상황을 반영해 국리민복과 안보를 지키기 위하여 일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학자들은 ‘국가는 합법적 폭력’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공동체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의 행동과 발언을 제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술도 때로는 표현과 유포에 있어 규제를 받을 필요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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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일어난 사건도 비슷한 맥락이다. 서울시가 기존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유명 작가가 아닌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가들을 지원하고자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에서 개최한 ‘2015 Sema 길드 아트페어’에서 벌어진 논란 얘기다. 참여 작가 중 한 사람인 홍성담 씨는 김기종의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살인 미수 사건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 냈다. 그런데 홍 씨가 자신의 작품에 적어 내려간 ‘제발’(題跋 : 서화 두루마리와 첩책 말미에 기록한 감상)의 내용이 문제였다. 그는 김기종을 안중근 의사로, 리퍼트 대사를 한국 침략의 주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 비유하며 공격 사건을 죄악시하는 한국의 현 주소를 개탄하는 글을 썼다. 해당 그림이 문제가 되자 서울시립미술관은 즉각 홍 씨의 작품을 내렸다. 그리고 독립 큐레이터 자격으로 전시를 기획했던 홍경한 경향아티클 편집장이 유감을 표명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리퍼트 대사에게 사과를 할 것이라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김기종 사건이 법적으로 살의(殺意)가 분명한 일이라는 점을 전 국민이 알고 있고, 당사자인 김기종 역시 징역 판결을 받은 상태인데, 리퍼트 대사에게 ‘사과’를 한다고 해서 일련의 논란을 진정 책임지는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전시 기획자인 홍경한 편집장은 홍성담 작가의 작품을 전시회에 내놓은 의도가 절대 정치적인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예술적 리얼리티’론이다. 김기종 사건을 비대칭적인 한미 관계에 대한 개탄으로 바라보는 어느 작가의 튀는 시각도 표현의 자유 안에서 포용력 있게 바라볼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한미 관계의 악화를 우려하는 국민이 적지 않고, 정부 당국자들 여럿이 긴장했던 상황을 되짚어 보면 기획자나 작가의 책임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큐레이터는 여러 작품을 엮어 나름대로의 관점과 의미를 발생시키는 편집자 아닌가. 과연 홍성담 작가의 작품 게시가 정치적 발상 없이 이루어졌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스럽다. 분명한 건 ‘사과’를 한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납득할만한 ‘제대로 된 대응’으로도 보기 힘들고.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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