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국의 디즈니를 키워라] 1부. 도약의 전제조건 <1> 콘텐츠기업 육성 방향

중기-콘텐츠 개발, 대기업-자금·판로 지원 … 한국형 상생모델 구축을

애니·게임 개발 중기 초기 제작비 부담 큰데 자금 조달은 쉽지 않아

성장단계별 맞춤 지원 글로벌 자생력 키워야


# 애니메이션 기업인 A사를 경영하던 윤현석(45ㆍ가명) 사장은 2년 전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캐릭터가 국내외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매출이 지지부진하면서 자금사정이 악화돼 결국 캐릭터를 넘기는 양도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윤 사장은 "애니메이션 기업인들이 가장 힘든 것은 제작비의 50~70%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라며 "비용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콘텐츠 매출이 커져야 하는데 방송사가 값을 낮게 책정해 현상유지조차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지상파 방송사가 지급하는 애니메이션 방영료는 편당 1,000만원 내외로 10~20회 방영해도 수익이 1억~2억원에 그치는 실정이다. 반면 애니메이션 시리즈 제작에 투입되는 비용은 30억원 내외로 VOD 판매나 해외 판권 수출, 캐릭터 매출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회사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처럼 열악한 기업환경은 애니메이션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게임·음악·출판 등 우리나라 콘텐츠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콘텐츠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중소중견 콘텐츠 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콘텐츠 기업 옥석 가려지고 있지만, 허리 아래가 약하다=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은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 매출액은 지난 2012년보다 4.9% 늘어난 90조원으로 전망됐고 수출액도 전년 대비 10.6% 증가한 51억달러로 추정된다. 지난해 제조업 연평균 성장률이 2.2%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세라 할 수 있다. 반면 콘텐츠 기업 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균 2.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상표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2000년대 초반 벤처 거품처럼 많은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가 경쟁력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옥석이 가려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오히려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면 전체적으로 선순환 구조를 안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콘텐츠 산업의 뿌리인 중소기업의 숫자는 매년 줄고 있다. 기업규모별로 보면 매출액 100억원 이상 사업체는 2010년 1,050개에서 2012년 1,186개로, 10억원~100억원 미만 사업체는 5,808개에서 6,208개로 각각 6.3%, 3.4%씩 늘었지만 1억원 미만 사업체는 7만6,484개에서 7만1,857개로 연평균 3.1%가량 줄었다. 옥석이 가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허리 아래 기업들이 부실해지면 결국 콘텐츠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최세경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원도 "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에 따르면 국제적으로도 기업의 경영 안정기를 창업 후 4년,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기간을 3년6개월로 보는 만큼 신생기업에 대해서는 콘텐츠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을 통한 생태계 조성이 한국 콘텐츠 산업 현실에 맞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정민 한국창조산업연구소 소장(홍익대 경영학과 교수)은 "창의적 아이템은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대기업보다 자유로운 중소기업 환경에서 창출되기 쉽다"며 "중소기업이 창의적인 콘텐츠를 기획, 개발하고 대기업이 자금지원이나 판로개척 등을 통해 힘을 보태는, 한국 실정에 맞는 대ㆍ중소기업 상생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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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과는 다른 산업 특성 고려해야=콘텐츠 산업은 지난 10여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지만 대다수가 재무구조는 물론 자금조달 여건까지 열악하다. 특히 제조업과 달리 담보로 설정할 수 있는 자산이나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물적 근거가 거의 없어 금융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정보팀장은 "콘텐츠 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앞으로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다른 산업에 비해 월등히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비상장 중소기업인데다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재무구조가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2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콘텐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분야로 자금 및 제작비 조달(40.8%)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대출이 가장 어려운 이유도 담보 취약(44.9%), 콘텐츠 기업 평가 시스템 부재(19.2%) 순으로 나타났다. 금융지원 시스템 대부분이 제조업 중심으로 돼 있어 무형자산인 콘텐츠를 제대로 평가하고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콘텐츠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통로는 모태펀드문화계정과 콘텐츠완성보증제도 정도다.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창업기업지원자금이나 기술개발사업화자금·성장기반자금 등은 대부분 생산설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거나 업력 7년 이상 중소기업 등 상대적으로 콘텐츠 기업에 불리한 조건들이 많아 실효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기 캐릭터 애니메이션 '라바'로 지난해 6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투바앤의 김광용 대표는 "프랑스나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애니메이션 산업 육성을 위해 세금환급 등 다양한 지원책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창조경제를 위해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기업환경을 고려한 정책은 부족하다"고 전했다.

최 연구원은 "그동안 콘텐츠 산업정책의 주체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중소기업 정책의 주체인 중소기업청의 정책이 이원적으로 이뤄지면서 콘텐츠 산업에 대한 중장기적 마스터플랜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문체부는 수요자인 콘텐츠 기업의 관점에서 정책을 발굴, 추진해야 하고 중소기업청은 제조업ㆍ기술 중심의 중소기업 정책에서 탈피해 콘텐츠 산업의 특수성에 맞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장단계별 맞춤형 정책 펼쳐야=전문가들은 콘텐츠 산업이 건실하게 성장하려면 스타트업(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중견기업→선두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단계별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선두기업을 집중 지원해 관련산업을 육성한 뉴질랜드나 신생기업에 대한 집중지원으로 산업기반을 튼실히 한 핀란드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뉴질랜드는 투자청·관광청·무역진흥청·영화진흥청 등 4개 기관이 컴퓨터그래픽(CG) 산업 육성을 위해 '웨타디지털' 설립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전담부서 설치, 획기적인 세금감면, 보조금 지급 등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웨타디지털이 영상제작 분야에서 세계 선두업체로 자리잡으며 관련 중소기업들도 함께 성장해 뉴질랜드는 세계 영상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 핀란드는 휴대폰 제조산업이 위축되자 콘텐츠 창업이 활발해져야 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범정부 차원의 전략을 마련했다. 노키아 등 대기업은 미활용 기술을, 창업보육기관은 프로젝트 진행을, 정부의 기술혁신지원청(Tekesㆍ테케스)은 자금을 지원하는 유기적인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던 것. 이에 힘입어 헬싱키대 학생 3명이 창업한 로비오사는 세계적인 캐릭터 '앵그리버드'로 세계 최고의 모바일게임 업체로 우뚝 서는 등 다양한 신생기업들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고 소장은 "콘텐츠 기업들을 글로벌 플레이어로 키우기 위해서는 산업에 대한 중장기적 마스터플랜을 갖고 성장단계 및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세심한 정책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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