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특파원 칼럼/7월 21일] 데자뷔(deja vu)

데자 뷔(deja vu) 베이징 이병관 특파원 천안함 사태가 터진 지 석 달 남짓, 한국 정부가 호언장담하던 천안함의 진실은 국제사회에서 묻혀버렸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9일 의장성명을 통해 “안보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북한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고 밝혔다. 천안함 사건은 이제 진실게임을 넘어 미ㆍ중간 동북아 패권 다툼의 아이콘이 돼버렸다. 미국의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동해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한다고 하자 중국은 서해에서 전시 해상수송 긴급훈련을 실시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천안함 사태는 한국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대국의 전략적 경쟁과 긴장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본질이 왜곡돼 흘러갈 수 있는지 보여준 극명한 사례다. 한국의 영원한 맹방 미국은 처음에는 “북한이 천안함 사태를 일으켰다”며 어떻게든 중국을 압박하고 설득해 안보리 제재를 이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힘없는 의장성명서였고 비슷한 시간에 미국 주도의 이란핵개발의혹 관련 안보리 제재가 중국의 동의로 통과됐다. 미국 입장에서야 천안함의 진실 규명과 제재보다는 이란의 핵개발을 막는 게 우선이었을 것이다. 유구한 역사가 보여주듯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은 없다. 특히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동북아는 물론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유리한 샅바를 잡기 위한 중ㆍ미간 전략적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주도했던 세력균형(status quo)이 중국의 도전으로 깨지면서 새로운 정치역학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 정부는 안이하게 한미 동맹이라는 우산에 안주해 불필요하게 중국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을 자초하고 있는지를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구한말 세계의 세력균형 변화에 눈뜨지 못하고 주변 열강의 영향력에 휘말리다 나라가 망하는 치욕을 겪었다. 물론 지금의 한국은 G20 정상회담의 의장국이고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대국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하지만 남북 분단 대치 상황에다 한반도를 통일해야 하는 더욱 어려운 도전에 처해있다. 어찌 보면 구한말보다 더욱 균형을 갖추고 지혜로운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최근 “한국이 망령되게 황해(서해) 군사훈련으로 중국을 압박하려 한다”,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한국은 정치ㆍ군사적으로 과도하게 친미적이 됐고, 냉전의 길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언론이 한국정부가 아닌 ‘이명박 정부’라고 못박은 것은 그만큼 지금 정부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전문가라는 중국의 모 교수는 사석에서 “중국은 한반도 북단에서 미국과 마주치는 것이 싫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을 꺼려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중국정부를 전적으로 대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중국을 그렇게 오판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봐야 할 때다. /yh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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