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이란 시위사태 파장… "민주화·개혁" 중동 확산 가능성

이란 시위사태 파장은…<br>실업률·물가 상승 경제난에 중산층들 불만 쌓여<br>대선 불복서 시작된 시위 신정체제까지 위협도<br>정치권 변화 불가피속 이슬람권에 자유화바람 불듯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서 재미 이란인 등이 웨스트우드에 모여 이란 정부의 반민주주의적인 시위 진압을 성토했다. 시위 참가자들이“학생들을 죽이지 말라!”“이란에 자유를!”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연합뉴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의 재선 성공이라는 대선결과 발표 이래 발발된 이란의 시위 사태가 열흘 여를 넘기고 있다.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 기조로 한때 수백만 명이 운집했던 시위 사태는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대선 불복' 에서 '개혁 쟁취'로 진행된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는 지적이다. 특히 아랍권에서 금기에 해당하는 종교 최고지도자에 대한 도전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개혁 요구가 중동권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랍권은 이란에서의 개혁 욕구가 국경을 넘어 확산될 것을 우려해 일제히 침묵에 들어갔다. 자신들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서구권도 관련 발언만을 쏟아내며 이란인들이 그리는 미래를 그저 지켜보고 있다. ◇근본 원인은 경제난과 민의 성숙=시위 발발의 직접 원인은 보수 성향 대통령의 재집권을 이끌어 낸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대다수의 이란 국민들이 "부정이 개입됐다"며 수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이란의 열악해진 경제사정, 여기에 어느덧 두터워진 중산층 들의 불만수위가 고조됐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에 대해 "일부 부정 등이 자행된 선거 결과는 이란에서 그리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라며 중산층 및 노동자 계층이 현 정부에 대해 등을 돌리게 된 점을 더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란 내 중산층들은 현 정권이 국내 정책에 있어서 지나치게 무능하고 국제 정책에 있어서 지나치게 대립적이라 보고 있다. 현 대통령은 노동자 계층 출신이지만 노동 계급이 많이 거주하는 수도 테헤란 남부에서조차 개혁 성향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대선 후보를 외치는 시위대들로 가득 차 있다. 이 같은 불만의 상당 부분은 경제난에서 기인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란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3.1%, 내년 3.4%로 전망되는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권역 내 3대 강대국과에 비해 최저치다. 물가상승률도 이란이 가장 높다. 이란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26% 급등한데 이어 올해에는 18%, 내년에는 15% 가량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올해 5%, 내년 3~4%선의 상승세를 예상하는 사우디 및 UAE에 비해 터무늬없이 열악하다. 경상수지 적자도 가장 커 회복세 역시 느릴 것이라는 평가다. 이란은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석유, 천연가스 등 원자재는 물론 각종 농산품까지 풍성하다. 그러나 정부 무능 및 서방 세계와의 단절 등의 원인으로 지속적인 경제난을 겪어왔고 이 같은 양상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며 더욱 가중됐다. 결국 정부는 사회 불만을 막기 위해 저가로 유지해 온 생필품인 밀가루 가격 등을 올려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실업률 역시 상당한데,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회 구성원의 주류인 20~29세의 실업률은 지난 2006년 기준으로도 20%를 넘어서고 있다. 반면 무사비 전 대선후보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인 1981~1989년에 총리로 재임하면서 이란 경제를 양호하게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세대의 후손에 해당하지만 '실용주의'를 겸비하고 있어 중산층 이하 국민들의 선호도가 높다. ◇종교는 그대로, 개혁은 강화=이란은 왕정을 택하고 있는 주변 걸프만협력기구(GCC) 국가와는 달리 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혁명 이래 신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의 두 기둥은 '민주주의'와 '신정'이라며 대선불복에서 시작된 시위 양상이 신정체제에 대한 불만으로도 이어지며 이란의 '연약한 기둥들(fragile pillars)'을 흔들고 있다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이슬람 신정 자체가 변화할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시위대들도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아파 종교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정'과 '응보'의 개념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보다 민주화된 사회 개혁을 향한 목마름이라는 데 전문가들은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점은 민심을 파고든 '종교'를 폐쇄-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온 중동 국가 지도층들에게 가장 큰 위협일 수 밖에 없다. UAE가 경제를 통한 이슬람의 개혁을 시도했다면, 이란은 대중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외신들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놀랍다"라는 이집트 등 주변국 젊은이들의 반응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돌풍, 어디까지 갈까=전문가들은 이번 시위가 이슬람 체제 내에서의 개혁 추구이지만 이란이라는 나라를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슬람혁명 이후 30년 만에 재현된 최대 시위 규모에 이란도, 국제사회도 모두 놀라고 있다. 1999년과 2003년 대학생 중심의 시위 사태가 일어난 적은 있었지만 이번 소요는 보다 광범위한 국민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정치권에도 변화가 일 전망이다. 타임지는 이번 사태 이면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국가 최고지도자와 무사비 후보를 지지한 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권력 다툼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강력한 상호연대를 자랑하던 이란 지도층이 분열됐다는 점에서, 신정 개혁을 향한 지도층 내부의 움직임은 이미 본격화됐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사태의 결론이 어떻게 나건 간에 이란의 근본적인 부분에 변화가 올 수 밖에 없고 이같은 개혁이 중동으로 퍼져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터넷·메세지등 활용, 젊은이·여성 '주체'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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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시위 사태의 또 다른 배경은 젊은이와 여성이다. 이란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30대 이하 젊은 층은 무사비 전 후보의 든든한 후원 세력이다. 이들은 할아버지 세대가 경험했던 풍요의 기억과는 거리가 멀지만, 현 정권의 지지 세력인 혁명수비대가 일부 이권을 전담하거나 시위 이후 언론 탄압 등이 자행되는 모습을 보며 현 이슬람 공화국의 정치가 타락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정부의 각종 탄압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란 내 인터넷 인구는 전체 인구 7,000만명 중 2,3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젊은이들은 또한 시위 과정에서 단문 메시지 송수신 서비스인 '트위터'를 '무기'로 활용하며 이란 민주화를 부추기고 있다. 인터넷 정보 취합기구인 오픈넷의 2007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어인 페르시아어로 운영되는 개인 블로그는 이미 40만개에 달한다. 여성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억압받는 이슬람권에서 무사비 전 총리는 유세 초반 그 자신보다도 부인인 자흐라 라흐나바르드 정치학 교수의 명성 덕택에 지지를 끌어 모았던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2~3명의 여성 장관을 임명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란 여성들 또한 보수적인 근동 아랍 국가와는 달리 복장으로 민의를 표현할 만큼 이미 개방돼 있다. 온몸을 덮는 검은 차도르를 입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짧은 스카프만을 머리에 두르고 자신이 개혁 성향임을 증명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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