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성복 브랜드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경기 불황과 소비패턴 변화 등으로 백화점의 여성복 매출이 심각한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과거 40~50대를 겨냥한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해외명품 브랜드에 밀리고 20~30대를 타깃으로 한 영캐주얼은 값싼 SPA(제조ㆍ유통 일괄형 의류)에 치이면서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브랜드 철수ㆍ유례없는 5월 세일=국내 대표 디자이너 부띠끄 중 하나인 마담 브랜드 '안혜영부띠끄'는 매출 부진을 버티지 못하고 브랜드 출시 24년 만에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철수한다. 안혜영부띠끄는 롯데백화점 본점 등 주요 매장에서 8월말까지 고별전을 진행한 뒤 9월 매장 개편에 맞춰 영업을 중단한다. 앞서 롯데백화점 본점은 지난해 가을ㆍ겨울시즌 여성 디자이너브랜드 매장을 개편하면서 마담 브랜드를 18개에서 16개로 줄였다.
롯데백화점 마케팅 담당자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요즘 40~50대의 감성을 읽지 못해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소비자들이 수입 명품 브랜드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영캐주얼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 3대 여성 기성복 브랜드인 미샤가 운영해 온 20~30대 대상 '아임포잇미샤'는 단독 매장을 전개한 지 1년 만에 백화점에서 고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경우 지난해 리뉴얼 오픈하면서 여성 영캐주얼 브랜드 3개가 철수했고 남성관이 들어오면서 여성 브랜드가 추가로 짐을 쌌다.
여성 브랜드들은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노세일 시즌'인 5월에 때아닌 할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주요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현재 30~60%의 할인 표지판을 내걸고 영업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백화점의 할인 압박으로 세일 표시를 전면에 부각시켰다"며 "(재고가 아닌) 봄ㆍ여름 상품의 할인 물량을 대폭 강화해 할인 상품 위주로 매출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 명품ㆍSPA로 양극화=불황으로 인해 값싸고 패션에 민감한 SPA 브랜드로 소비자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영캐주얼은 브랜드별 컨셉트가 모호하고 특성이 없다 보니 저렴한 SPA브랜드로 빠져나가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동안 열풍으로 40~50대도 SPA 브랜드를 즐겨 찾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SPA로 소비가 몰리자 백화점들까지 앞다퉈 SPA 매장 유치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국내 백화점 처음으로 H&M 매장을 명품과 나란히 1층에 입점시켜 화제를 모았다. 지난 4월 개점한 신세계 의정부점도 유니클로, GAP 등이 입점했다. 수백평 규모의 SPA 브랜드가 백화점에 진출하면서 영캐주얼 브랜드는 퇴출 또는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국내 브랜드들이 고전하는 사이 유니클로, 자라, H&M 등 대표 수입 SPA브랜드 3사는 업체별로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0%에서 최고 2배나 늘어나며 국내 시장 장악에 성공했다.
국내 패션기업들도 앞다퉈 해외 브랜드를 수입하거나 SPA브랜드를 출시하는 데 열을 올리면서 국내 여성복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타임과 마인 브랜드를 전개하는 국내 최대 여성복 브랜드 한섬은 최근 새로운 수입 브랜드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방시와 셀린느를 추가로 라인업하며 수입 브랜드 키우기에 집중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토종 SPA '에잇세컨즈' 를 론칭, 적극적인 매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소비가 얼어붙은데다 봄ㆍ가을 간절기까지 사라지면서 국내 패션업계가 거대한 패더라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며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