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 바탕 원칙중시 '불도저'지난 68년 한국은행 입행 이후 청와대 경제비서실, 재무부, 수출입은행을 거쳤다. 재무부에서는 이재국, 국제금융국 및 경제협력국과 관세청 기획관리관,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 ASEM 준비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여러 분야에서 탄탄한 실력을 갖췄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매우 합리적이어서 일을 결정할 때는 주변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참고하는 유연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부당함과는 타협하지 않으며 일단 결정된 사항은 정확하고 투박하게 밀고 나가는 고집도 있어 '불도저'라는 닉네임도 이름 앞에 붙어 다닌다.
80년대 상반기, 국가 전체적으로 외자차입에 주력할 때는 가장 유리한 조건의 차입을 성사시켰고 국제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후에는 서둘러 악성 차관을 정리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평소 우리 경제가 이 지경에 이른 데 대해 '근본과 원칙을 외면한 탓'이라고 한탄한다.
98년 이후 수출입은행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실무이론에 밝고 방향감이 탁월한 결정으로 여신 부실화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비켜갔다.
독서열이 높은 학구파로 각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서울대 재학시 '대학신문' 기자로 활동하는 등 필재를 갖추고 있다. 사회 초년병이던 한국은행 조사부 시절에는 '명문ㆍ다작'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6월 투자신탁협회 회장을 맡았다. 투신업계에서는 그를 어려운 업계를 잘 이끌어갈 인물로 기대하고 있다.
<약력>
▲45년 전주생 ▲68년 서울대 상대 졸업, 한국은행 입행(조사부)
▲70년 제8회 행정고시 합격 ▲72년 청와대 경제비서실 ▲73년 재무부(이재국, 국제금융국, 경제협력국, 국고국) ▲79년 바레인주재 대사관 외무서기관 ▲89년 관세청 이사관(기획관리관, 교육원장, 인천본부세관장)
▲93년 재무부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 ▲97년 재정경제원 관리관(아시아유럽정상회의기획단 본부장) ▲98년 한국수출입은행장 ▲2001년 투자신탁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