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칼럼] 뜯어 말리고 싶은 중국 유학


베이징 우다오코우. 베이징대ㆍ칭화대ㆍ인민대 등 중국의 명문대학이 밀집해 학원로라고 부르지만 한국 유학생들에게 이곳은 유혹의 섬이다. 부모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새로운 환경이란 스트레스가 동시에 밀려오며 외로움에 지친 한국 학생들에게 우다오코우는 일탈의 현장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주말 어린 자녀들과 외출을 하는 중국인들에게 이곳은 기피대상 지역 중 하나다. 많이 봐야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짧은 치마에 짙은 화장을 하고 노래방과 맥줏집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본 중국인들은 혀를 찬다. 물론 모두 한국 유학생은 아니지만 중국인의 눈에는 한류 아이돌에 빠져 있는 자녀들을 걱정하듯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쳐진다.


한국 유학생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중국인들의 비유에도 나타난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노은재 작가는 중국인들이 한국 유학생들을 꾐에 빠져온 유학(誘學), 멋모르고 흘러온 유학(流學), 물 위에 뜬 기름 같은 유학(油學), 자포자기로 노는 유학(遊學)이라고 부른다며 일면 수긍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誘學ㆍ流學ㆍ油學ㆍ遊學이 된 留學

그래도 대학생의 경우 성인이고 자신의 선택인 만큼 결과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유학을 했으니 취업 정도야 대수겠냐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미안하지만 중국에 있는 한국 기업들은 중국 유학생을 선호하지 않는다. 중국 내 네트워크도 중국인만큼 못하고 그렇다고 글로벌 감각이 한국 내 취업 준비생보다 못한데도 급여 기대치만 높기 때문이다. 중국 매체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들어와 있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중국 유학이 취업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푸념을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노는 유학을 하는 것도 성인이 자기 책임이고 실력을 갖추는 것도 자기 책임이다.


더 큰 문제는 조기 유학으로 중국에 온 초중고생들이다. 기숙학교나 홈스테이 등으로 혼자 중국으로 온 학생들 중 일부는 적응을 못하고 외로움에 지쳐 점점 수렁으로 빠져든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중압감과 갑자기 바뀐 주위환경에 대한 스트레스는 쉽게 일탈의 유혹을 받아들이게 되고 점점 일탈의 범위가 커져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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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예민한 사춘기에 부모를 떠나 중국으로 와서 겪는 고민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은 중국 생활에 일찌감치 지쳐버린 셈이다. 최근 베이징 한국인 거주 지역인 왕징에서 유학생 3명이 연이어 자살을 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보듬어줄 대상이 누구도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유학원들이 중국에 오는 조기 유학생을 모집하고 관리책임을 진다. 하지만 유학원의 관리는 중국에 도착해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끝이다. 한국보다 더 지독하게 성적만 관리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끌려와 적응조차 힘든 학생들은 유학원에 그냥 시간만 때우고 큰 사고 없이 돌아가기만 해주면 고마운 장기 관광객일 뿐이다.

방치 속에 일탈하는 조기유학생들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커지고 있는 중국 조기유학생에 대해 교육부 차원에서 관리는 제대로 될까. 실망스럽게도 현재 우리 주중대사관이나 교육부는 유학생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대학생들의 숫자는 중국 교육부 통계를 통해 지난해 말 기준 6만4,488명이란 수치를 확보하고 있지만 초중고 유학생은 아예 관리 대상도 아니다. 주중한국대사관 관련 공무원에게 "목숨을 잃은 학생들의 문제가 무엇이었고 재발방지대책은 세우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제 담당 업무가 아닙니다. 개개인의 문제 아니겠습니까"라는 말이었다.

중국 내 외국 유학생 가운데 3분의1이 한국유학생이라고 할 정도로 중국 내 한국유학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에서 밝혔듯 인문교류가 활성화된다면 유학생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양적인 팽창만큼 질적인 발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미래 한중 관계에서 주춧돌이 될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리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만약 지금 이대로라면 중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있다면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 뜯어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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