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이 오는 29일부터 시행되면서 머니무브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장 고액 자산가들은 절세상품을 기웃거리며 피난처를 찾고 있다.
◇비과세 상품 문의 많아=금융실명법이 시행되면 차명계좌를 통해 돈을 분산해놓은 고액 자산가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예금을 들어야 한다. 금융실명법을 위반할 경우 받는 처벌 강도가 훨씬 강해진 탓이다. 실제 29일 이후 금융실명법을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차명거래로 얻은 부당이익만큼의 세금만 추징당한 이전과 비교해 처벌 강도가 훨씬 강해지는 것. 또 차명 건수가 발견될 때마다 매번 처벌을 받게 된다. 공소시효도 없다. 금융소득 연 2,000만원 이상의 자산가에게 부과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자산가들은 자금을 본인 명의로 관리하면서도 절세를 할 수 있는 비과세 상품에 눈길을 주고 있다. 저축성 보험의 경우 5년 이상 납입하고 10년 이상 유지하면 발생 이자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영아 기업은행 PB고객부 과장은 "자산가들 사이에서 금융실명법 시행과 관련한 절세 문의가 많다"며 "이중 절세가 가능한 보험 가입에 대한 문의가 많다"고 밝혔다.
보험업계는 대형사들을 중심으로 금융실명법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등 자산가 자금 유치에 힘쓰고 있다.
개인투자자가 얻은 자본차익에 대해 세금을 떼지 않는 주식 및 주식형펀드 상품에 대한 문의도 꾸준하다. 한 시중은행 PB는 "자산가들로서는 금융실명법이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상황"이라며 "조세 면제 협정에 따라 배당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는 브라질 국채나 그와 유사한 비과세 상품에 대한 투자를 권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초부터 한 달여 동안 국내 주식형펀드로 유입된 자금이 1조7,000억원을 넘어서 자산가들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몸 사리는 자산가들=금융실명법을 앞두고 몸을 사리는 움직임도 보인다. 갑작스럽게 많은 자금을 이동할 경우 자금경로가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박진석 하나은행 영업1부 PB팀장은 "차명계좌의 돈을 움직일 경우 자금 흐름이 당국에 의해 포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직 신중한 자산가들도 꽤 있다"며 "실제 금융실명법이 본격 시행된 후 주위 사례 등을 보고 움직이겠다는 자산가도 눈에 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금융실명법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관련 준비를 해온 자산가들이 많아 29일 전까지 자금 흐름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동일 국민은행 대치PB센터 팀장은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절세를 위해 자금을 분산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며 "차명계좌에서 빼낸 자금은 절세혜택이 높은 투자자산으로 많이 움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억원을 넘는 정기예금 규모가 지난 2012년 284조원 규모에서 지난해 274조원 규모로 줄어드는 등 고액 자산가의 뭉칫돈이 은행을 빠져나가는 경향이 포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