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순방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난징에서 30만명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일본의 과거사를 맹비난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희생자 수에 대한 논란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반발해 과거사를 둘러싼 양국 관계의 균열이 한층 심화되고 있다.
시 주석은 28일(현지시간) 독일 쾨르버재단에서 열린 공개강연에서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난징에서 민간인 30만명 이상을 무참히 강간·살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 군국주의가 일으킨 이 전쟁으로 중국인 3,500만여명이 죽거나 다쳤다"면서 "이 같은 참극의 역사는 중국 인민에게 뼈에 사무칠 기억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국제무대에서 난징대학살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 주석은 1937년 난징에서 일본군과 협상하며 중국인 20만여명의 목숨을 구하고 대학살의 상세한 기록을 남겼던 독일인 의사 욘 라베를 떠올리며 독일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일본은 30일 주일 중국대사관 공사를 초치하는 등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상(장관)은 이날 "(30만명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중국 지도자가 제삼국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비생산적이며 상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난징대학살 희생자 수에 대해 중국 역사학계는 30만명 이상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2만~20만명까지 분분하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그동안 대일 비판을 자제해온 시 주석의 이번 강연은 중일관계가 단기간 내 호전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악화일로를 걷는 양국 관계를 드러내듯 중국 해군은 다음달 칭다오에서 열릴 국제관함식에 일본 자위대를 초청하지 않았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한편 시 주석은 이 강연에서 최근 급속히 불어나는 국방예산과 관련해 "아편전쟁 이후 서방 열강의 노예·식민지로 전락한 과거를 되풀이할 수 없다"면서 "(국방예산은) 매우 정상적이며 중국같이 큰 나라의 국방건설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강필패(國强必覇·국가가 강성하면 패권을 추구한다)의 길을 걷지는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국방예산에 관해 중국 지도자가 구체적 입장을 밝힌 것 역시 이례적이다.
시 주석의 이날 강연내용은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중국의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역사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난징대학살과 관련해서는 저우언라이 전 총리가 "과거를 망각하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고 말한 정도다. 이 말은 현재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에 현판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