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도 기록되지 않으면 역사가 될 수 없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도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도, 교훈을 얻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대표적인 기록자였던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년?)는 기원전 491~449년 당시 세계 최강 페르시아와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에 벌어진 최초의 동서 국제 전쟁인 페르시아 전쟁을 담은 '역사'를 썼다. 당시 페르시아는 영토면적이 약 480만㎢로 우리나라의 약 48배에 달하는 인류 역사 최초의 제국이었다. 테르모필레 전투, 세계 4대 해전으로 불리는 살라미스 해전 등이 모두 '역사'에 등장하는 전쟁의 기록이다. 소아시아의 할리키르나소스 태생인 헤로도토스는 모함을 받아 아테네에 정착하기 전까지 반평생을 유럽과 아시아를 떠돌아 다녔는데 '역사'가 생생하게 기록된 것은 그 자신이 여러 지역을 오랜 세월 여행한 덕분이다.
폴란드 출신의 기자이자 르포작가이며 시인인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1932~2007) 또한 평생 낯선 공간, 미지의 세계를 떠돌며 민족과 문화, 종교의 이질성으로 빚어진 소통의 장벽을 허무는 데 자신의 생을 마친 인물이다. 카푸시친스키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처음 만난 것은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직후 해외로 첫 취재 여행을 떠났을 무렵이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평생 홀로 타지를 떠돌던 저자에게 유일한 동반자가 됐으며, 결국 그가 죽기 전 해인 2006년 마지막 에세이로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을 남겼다. 이 책은 전 세계 17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이탈리아에서 모란테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에는 크게 두 명의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하나는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의 주요 장면을 인용하면서 그 장면이 갖는 의미와 현대사회와의 연관성을 냉철하게 되짚어보는 분석자로서의 카푸시친스키이다. 저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해묵은 동서양의 대립과 반복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기원을 밝히고자 애쓴다.
두 번째 내레이터는 특정 장소로 파견돼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로서의 카푸시친스키이다. 30여년 동안 인도와 중국, 이집트와 이란, 아프리카 대륙과 그리스를 오가며 저자가 몸소 체험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2,500년 전 헤로도토스의 여정을 따라가 보고, 20세기 카푸시친스키의 취재 여행에도 동참하면서 어느 틈엔가 헤로도토스의 페르소나인 카푸시친스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선입견을 일체 배제한 열린 시각으로 주류 문화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조명해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미적 감수성과 보편적 정서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2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