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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년간 이스라엘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스탠리 피셔(69ㆍ사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가 임기를 2년 앞두고 조기 사의를 표명하자 그 배경에 국제금융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피셔 총재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정책적 이견을 보였다는 점이 거론되는 가운데 국내외에서 신망이 두터운 피셔 총재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최근 총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네타냐후 총리에게 또 다른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 중앙은행은 29일(현지시간) 피셔 총재가 네타냐후 총리에게 오는 6월30일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성명은 그가 이스라엘 경제발전과 새 중앙은행법 통과 등 총재로서의 주요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임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2005년 임기 5년의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처음 선임된 그는 2기 임기를 2년가량 남겨둔 상태다.
이스라엘 영자신문인 '타임 오브 이스라엘'은 직접적인 사임 요인을 지목하지는 않으면서도 피셔 총재가 네타냐후 총리와 유발 스타이니츠 재무장관의 재정정책을 비판해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신문은 또 현지의 다른 언론을 인용해 네타냐후 총리가 피셔 총재에게 차기 재무장관직을 제의했으나 피셔가 이를 고사했다고 전했다.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 총재직에 오른 피셔 총재는 국제경제가 혼란한 가운데도 이스라엘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해 국제시장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9부터 2012년까지 이스라엘이 14.7%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데는 그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스라엘 경제안정의 일등공신으로 인정받는 그의 조기 사임은 당장 이스라엘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은 이날 "피셔의 전격 퇴진은 네타냐후에 대한 불신임"이라며 즉각 정치공세에 나섰다. 시장에서는 이스라엘 재정적자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가 이스라엘 경제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날 텔아비브증시는 0.9% 하락했다.
유대계 영국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지닌 피셔 총재는 미 MIT 교수 재직시절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을 제자로 뒀으며 이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각각 부총재를 지내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당시 IMF 부총재로서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주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