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막오른 I2 시대] <하> 위기의 한국 IT

M&A는 파트너 확보 수단… '미래' 사는 투자 마인드 길러야

거대 내수시장 장악한 中업체, 업종 등 안가리고 美기업 투자

한국기업은 식민지 점령 인식… 싸게 사서 기술 빼낼 궁리만



"우리는 진정한 글로벌 회사가 될 겁니다. 여러 동물들이 모여있는 동물원이 한 동물만 있는 농장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알리바바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거래하고, 모바일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잭 마 알리바바 회장은 지난 15일 홍콩에서 열린 기업공개(IPO) 사전 투자설명회에서 거침이 없었다. 지리적 장벽도, 업종도, 온라인과 오프라인도 가리지 않고 사업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차오 DCM캐피탈 파트너는 "중국 IT 기업이 간절히 원하는 건 혁신의 비법과 성공적인 미국 입성이고 그걸 위해 기업인수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의 거센 공격에 실리콘밸리가 요동치면서 세계 IT 질서가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어떤가. 위기가 코 앞에 있는 데도 인수합병 전략 등에서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M&A는 식민지가 아닌 파트너 확보= 미국 기업은 인수한 회사를 점령하지 않는다.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한다.

실제로 마크 주커버그는 왓츠앱을 190억 달러에 인수한 후 어떤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왓츠앱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오큘러스를 3일 만에 "20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결정한 후에도 브레덴 아이리브 CEO에게 "당신은 하던 걸 그대로 하라"고 말했다. 반대의견도 많았지만, 그의 비전을 인정하고 도와주겠다는 말만 했다.

M&A 후발 주자인 중국 기업도 인수기업을 돕는 게 먼저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8월 샵런너에 7,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연 회비 79달러를 받고 다양한 제품을 2일 내에 배달해 준다. 조만간 중국 소비자에게 똑 같은 서비스를 10일 내에 해줄 예정이다.

피오나 디아스 샵런너 최고전략경영자(CSO)는 "알리바바는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미국기업이 할 수 없는 언어, 관세, 결제, 정치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며 "거대한 물류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어 UPS를 이용하는 것보다 배송비가 훨씬 저렴하다"고 만족했다.


지난 3월 2억8,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은 탱고의 에릭 세튼 최고기술기술경영자(CTO)는 처음에는 투자 받기를 꺼려 했다. 미국 투자자가 아닌 낯선 중국 돈을 굳이 받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알리바바 본사에서 잭 마 회장 등 주요 임원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며 "텐센트가 독점하고 있는 중국시장을 뚫기 위해선 알리바바보다 더 나은 파트너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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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기업은 M&A를 식민지 점령으로 인식한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삼성이나 LG, SK 등 한국 기업들은 인수한 기업의 경영진과 조직을 바꿔 내 스타일로 만들려고 한다"며 "기업은 창업자의 사업에 대한 동물적 감각, 똘똘 뭉친 직원들이 핵심인 만큼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싸게 사지 말고 비싸게 키워라=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19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하자 '가격거품' 문제가 불거졌다. 주커버그는 "내 생각에는 왓츠앱 자체만으로도 19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고, 더해서 페이스북의 더 큰 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현재 가격이 아닌 미래 가치로 산 것이다.

그는 "왓츠앱이 페이스북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면서 10억 사용자에 도달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매일 방문하는 사용자도 전체의 70%로 페이스북의 최고 기록인 62%보다 높다"고 반박했다. 왓츠앱이 텐센트나 구글, 유튜브보다 더 유명해질 것으로 자신했다. 그러면서 "왓츠앱은 앞으로 5년 동안 돈을 버는 것보다, 사람들을 어떻게 더 잘 연결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잭 마 알리바바 회장이 IPO 투자설명회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인수전략이 뭐냐"는 것이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회사를 중구난방으로 사들인다는 지적이다. 그 중 하나가 축구팀이다. 알리바바는 광저우 축구팀의 지분 50%를 1억9,200만달러에 인수했다.

잭 마 회장은 이사회에서 "중국인들은 축구를 좋아한다. 그러나 축구 산업이 어렵다. 알리바바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잭 마 회장은 중국 축구의 미래를 산 것이다. 중국 축구는 알리바바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 15년 전 중국인은 온라인 구매를 안 했고, 신용카드도 안 썼으며, 물류도 엉망이었다. 그러나 잠재력을 보고 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축구도 같은 길을 걷게 하겠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이호찬 KTB벤처스 샌프란시스코 지사대표는 "한국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는 안 하고 정보만 받아가면서 스타트업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며 "회사를 인수해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싸게 살까, 어떻게 하면 기술을 알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미래를 놓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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