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소치올림픽의 결과는 아쉬움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고질적 병폐인 파벌에 밀려 한국대표팀에서 배척 받은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에 귀화해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게 대견하면서도 아프다. 비단 금메달 하나가 아쉬워서가 아니다. 국적을 바꿔서라도 공정한 평가를 받고 싶었던 선수가 한 사람뿐이었겠는가. 유도의 추신수도 파벌의 벽에 국적을 버렸다.
주지하듯이 스포츠는 어떤 분야보다도 객관적이고 공정함이 담보될 수 있는 분야다. 기록이 매겨지고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기에 승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스포츠마저 파벌이 지배하는 판국에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는 온전한가. 지난해 여름 내내 온 국민을 전력수급 비상에 떨게 만들었던 원자력전력 마피아를 비롯해 사회 각 분야에서 한 줌의 온당치 못한 기득권이 국가경제와 국민행복을 좀먹고 있다. 소치의 부진을 야기한 빙상경기연맹의 파벌 난맥상은 우리 사회의 단면일 뿐이다.
안 선수가 역경을 딛고 거둔 인간 승리는 분명 박수 받아 마땅하다. 축하를 보내면서 이제는 우리 내부를 다스릴 때다. 외국언론이 어떤 보도를 했는지 생각해보라. 로이터통신은 '한국 쇼트트랙에 금이 없어 안 선수의 승리가 더욱 값지다'라고 타전했다. 미국의 한 언론은 '마이클 조던이 쿠바를 위해 뛴 꼴'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우리가 파벌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외신의 조롱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치에서도 결실은 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달린 박승희 선수의 동메달은 금메달보다 값지다. 스포츠는 감동이다. 소치의 부진은 약이 될 수 있다. 우물 안 기득권을 극복하는 데 스포츠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