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5만원권 발행 5년] '지하경제 양성화'에 꼭꼭 숨었나… 환수율 27%로 작년의 반토막

과세정책 강화 작년부터 환수율 떨어지기 시작 "지하경제 활용" 힘실려

10만원권 수표 결제는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


2011년 4월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마늘이 아닌 현금다발 110억8,000만원이 쏟아져 나왔다. 5만원권이 군데군데 묻어둔 김치통과 플라스틱 페인트통 24개에 꽉꽉 차 있었다. 밭을 소유한 가족이 도박사이트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감당할 길이 없어 밭에 숨긴 것이 나무를 옮기는 포크레인 작업 중 우연히 발견된 것이었다. 평범했던 시골마을은 외지인의 발길이 이어지며 한동안 술렁였다. 마늘밭은 '5만원권=지하경제'의 단면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오는 23일 5만원권이 시중에 유통된 지 5주년을 맞는다. 2009년 도입된 5만원권은 1만원권에 과도하게 편중됐던 은행권 유통구조를 개혁하고 발행 및 유통비용을 줄였다는 점에서 도입 취지를 일부 살렸다. 2008년 발행잔액 기준 92%에 이르던 1만원권 비중은 지난해 29%까지 줄었다. 지난해 5만원권 비중은 67%다. 액수로 보면 전체 은행권 61조1,000억원에서 5만원권은 41조3,000억원, 1만원권은 17조9,000억원이다.

5만원권이 대체한 10만원권 수표는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만원권 수표의 하루 평균 결제 규모는 112만9,000건(1,129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감소했다. 10만원권 수표를 가장 많이 썼던 2007년(406만2,000건)과 비교하면 4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전히 은밀한 현금거래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5만원권은 '명과 암'이 여전히 공존한다.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5월 발행된 5만원권은 5조2,529억원인 데 반해 같은 기간 환수된 5만원권은 1조4,575억원으로 환수율이 27.7%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52.3%에서 반 토막 난 것이다. 5만원권 환수율은 발행 첫해인 2009년 7.3%에서 △2010년 41.4% △ 2011년 59.7% △2012년 61.7% 등으로 꾸준히 상승했지만 지난해 48.6%로 뚝 떨어진 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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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5만원권이 숨어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5만원권 환수율이 지난 몇 년간 높아지다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과세 강화 정책이 시행된 지난해를 기점으로 갑자기 떨어지고 있다"며 "이는 5만원권이 지하경제로 활용된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하경제 양성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관련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하향 조정됐고 금융정보분석원(FIU)의 보고기준이 강화되면서 1거래일간 2,000만원 이상의 현금을 입금하거나 출금한 거래자의 정보는 모두 분석해 국세청이나 검찰 등에 통보된다. 금융거래 내역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자산가들이 현금을 보유할 소지가 커진 것이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는 현금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도 낮췄다.

자영업자의 공공연한 탈세 관행도 5만원권의 지하경제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고소득 자영업자 세무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음식업·골프연습장 등 현금수입업종으로 분류된 자영업자의 소득탈루율은 57%에 이르렀다. 100만원을 벌어 57만원을 과세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물론 이 조사 결과가 전체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탈루 가능성이 높아 세무조사를 받은 경우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음성 탈루 관행은 광범위한 게 엄연한 현실이다. 우(牛)시장, 중소기업이 몰린 공단지역, 경마장ㆍ카지노 등은 현금거래가 관행이고 세금탈루·뇌물수수 등 불법거래도 여전히 많다.

이에 대해 한은은 5만원권 환수율이 떨어지고 있는 데는 사회 전반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므로 5만원권이 지하경제의 수단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5만원권은 액수가 큰 만큼 유통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훼손율도 낮아 총 환수율이 낮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5만원권 환수율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시중의 5만원권 수요를 반영하는 발행액 증가세도 둔화됐다"고 덧붙였다. 시장에 수요가 있는데 안 찍어내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은이 5만원권 발행과 환수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설명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5만원권 환수율이 불과 몇 달 만에 60%에서 20%대로 떨어진다는 것은 경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라며 "한은은 5만원권이 지하경제에 활용되고 있다는 주장에 신경질적으로 반박만 할 게 아니라 기존 분석 틀로 안 된다면 새로운 통계를 마련해서라도 명쾌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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