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껍데기는 가라

우승호 기자<증권부>

#상황1. 지난해 말 코스닥 A사 사장은 용산을 찾았다. 9개월째 매출이 없었다. ‘주된 영업의 정지’ ‘감사의견 거절’로 퇴출이 불가피한 상황. 거금 3,000만원을 주고 20억원의 매출을 샀다. 회계사를 어르고 달래 ‘계속기업으로서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꼬리표를 달고 ‘한정의견’을 받았다. 이를 통해 퇴출은 일단 피했다. 몇달째 밀린 월급에 직원들은 다 떠났지만 회사는 불어난 적자를 감자로 털어내고 초단기로 돈을 빌려 유상증자에 성공했다. 회사는 유령처럼 인수합병(M&A)시장의 매물로 떠돌고 주가는 꾼들에 의해 널뛰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상황2. 지난해 4월 초 강남의 한 회계법인 사무소. 밤 늦은 시간 여남은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난입했다. 한 회계사를 둘러싸고 ‘감사의견 거절’을 철회하고 ‘재감사’를 수용하라며 몇시간 동안 윽박지른 끝에 마침내 ‘재감사’ 약속을 받아냈다. 다른 회계법인 사무실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감사범위 제한에 의한 한정의견’을 철회해달라는 요구였다. 재무담당자가 회삿돈을 횡령해 회계감사가 불가능했지만 고소를 취하하고 ‘재감사’를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 후 대주주가 여러번 바뀌면서 목숨만 부지할 뿐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내는 구제불능 상태다. #상황3. 최근 코스닥의 상ㆍ하한가 폭이 12%에서 15%로 확대됐다.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도 쏟아졌다. 그렇다고 급등락이 줄고 주가조작이 감소하면서 시장의 투명성과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착각이다. 일명 꾼들은 코웃음을 친다. 코스닥종목은 덩치가 작아서 상ㆍ하한가 폭을 넓혀도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지를 치지 말고 뿌리를 뽑으라고 말한다. 시가총액이 적은 이른바 껍데기를 솎아내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나 올들어 감자를 통해 생명을 연장한 기업은 벌써 20곳은 넘는다. 이런 추세로 갈 경우 지난해 전체 건수(70곳)를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껍데기는 썩기 전에 버려야 한다. 상한가 폭 확대는 거래량을 늘려 거래소와 증권사의 배는 불려줄지 몰라도 시장 건전화에 대한 근본 대책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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