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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인 직장인 박신혜(38·가명)씨는 여자 동료 5명과 최근 뜨고 있는 수천만 원대 초고가 '위버 럭셔리'시계를 사기 위해 6개월간 '시계 계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상급 명품 시계의 경우 1,000만원을 훌쩍 넘어 단번에 구입하기에 적잖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 달에 한두 차례 모여 인기 아이템 정보를 나누거나 복잡한 시계 기능을 공부한다. 또 갤러리아 명품관 EAST 하이주얼리 &워치 매장을 수시로 찾는 등 '트렌드 따라잡기'에도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새 성공한 남성의 전유물이자 로망으로 떠오른 위버 럭셔리 시계에 꽂힌 여성이 늘고 있다. 위버 럭셔리 브랜드란 수백만 원대의 명품 브랜드를 넘어 천 만원에서 높게는 억 단위의 초고가 브랜드를 지칭하는 말로, 주 고객이 남성 뿐 아니라 전문직 여성으로도 확산하는 모습이다.
18일 갤러리아명품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3일까지 위블로, 예거 르쿨트르, 브레게, 바쉐론, 오데마피게 등 대표적인 위버 럭셔리 시계 브랜드에서 남성 고객 매출이 8% 증가한 반면 여성은 같은 기간 13% 상승했다. 특히 여성 고객 중에서도 30~40대가 60%로 압도적이었으며, 20대도 7% 이상 늘어나 젊은 층이 초고가 럭셔리 시계 시장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준 갤러리아 명품관 시계 바이어는 "여성들이 전에는 시계를 주얼리처럼 착용하는 편이었지만 최근 들어 시계와 주얼리를 구분하고, 기능적인 시계를 찾기 시작했다"며 "예물 시장에서 보통 여자는 주얼리, 남자는 시계를 구입했지만 요샌 여자도 시계를 필수품에 포함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가 시계 시장에 여성 유입이 거세지고 있는 이유는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구매력 있는 전문직 여성이 늘어났고, 명품 시장이 성숙하면서 가방에서 시작한 명품 구매가 구두와 옷에 이어 최상위 단계인 시계 분야까지 옮겨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남성 사이에 시계 열풍이 불면서 사회적으로 시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점도 주요 이유다.
남성적 디자인의 특성상 남자들한테 인기가 높은 '위블로'는 최근 여성 고객이 빠르게 늘고 있는 대표브랜드다. 위블로에 따르면 스톱워치 기능인 크로노그래프가 있는 시계나 무브먼트가 그대로 노출되는 '스켈레톤 다이얼'과 같은 클래식하고 중성적인 시계의 여성 구매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 소미혜 위블로 마케팅 과장은 "33mm 이하 작은 다이얼을 선호하던 여성들이 41~42mm의 중성적 시계를 구매하고 있다"며 "여성들이 좋아하는 파베 워치 비중을 늘리는 등 상품 구색도 남성과 여성 제품을 5대5로 조정했다"고 말했다.
남성 고객이 선호하는 기계식 무브먼트 시계만 갖춘 브레게의 경우 한국 시장에서 유독 여성 고객이 두드러진다. 세련되고 개성이 강한 디자인 특성상 최근 클래식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여성 마니아층이 생기고 있다는 것. 김유란 브레게 마케팅 대리는 "최근 기계식 시계가 유행이어서 여성들에게 브레게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쥬얼리 시계의 느낌이 강한 예거 르쿨트르 역시 두터운 고객 층을 형성하고 있다. '랑데부', '리베르소' 등 2,000만~3,000만원대의 제품이 인기가 많고, 여성 고객이 35% 정도나 된다. 주로 기능이 가미된 시계가 많이 나가고, 윤년은 물론 2100년까지 맞춰진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갖춘 시계도 인기다. 황정희 갤러리아 명품관 부띠그 매니저는 "'그들만의 명품'으로 시계만큼 좋은 아이템이 없다"며 "예거는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 때문에 오히려 작은 다이얼 제품이 인기가 좋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