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50년 쌓인 눈물 7순노인 '펑펑'

50년 쌓인 눈물 7순노인 '펑펑'방북단 생사확인 발표-감격..회환.. 『흥남부두에서 「같이 가자」며 울먹이던 누이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 모습을 5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는데… 살아있다니 이제는 만날런지요.』 27일 전격공개된 남측 이산가족방문단 후보 생사확인자 명단에서 두 누이 김선비(62), 선숙(59)씨가 북한에 살아있음을 확인한 김원찬(76·경기 남양주시 평내동)씨는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50년 12월20일 중공군의 공세가 강화되자 「보름이면 돌아오겠지」라는 생각으로 흥남부두에서 부모님과 두 누이를 남겨둔 채 남으로 향하는 배를 탄 것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는 김씨. 김씨는 『결혼을 한달여 앞둔 약혼자였던 부인(한흥순·72)도 함께 월남했지만 그때 미룬 결혼식은 회갑잔치 때야 치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살아계셨다면 100세 안팎이 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짐작했던 바지만 피난 당시 평양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동생 형찬씨가 명단에 없고 함께 월남했던 막내 남동생 이찬씨가 20년 전 중풍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김씨는 『기술자로 일한 덕에 인민군 징집을 간신히 피하다 결국 신체검사까지 받았지만 입대 전 월남해 국군에 입대한 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도 근무했었다』며 『혹시나 반공포로 중 형찬이가 끼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고 회고했다. 북쪽의 어머니·남동생·여동생을 찾았던 채성신(72·경기도 하남시 덕풍동)씨는 27일 오전부터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를 찾아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이미 세상을 하직하고 여동생 정열(62)씨 한명만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훔쳤다. 고향인 평북 영변군 황원면에서 48년 9월 월남한 채씨는 『반공주의자였던 아버지가 47년 늦가을 「북한에서는 못살겠다」며 월남하셨고 1년 뒤에 나도 남쪽에서 공부를 할 생각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채씨는 『고향에 집도 있고, 땅도 있어 어머니와 동생들은 고향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면서 『남으로 올 때는 6·25동란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38선이 이처럼 반세기가 넘도록 남북을 가로막아 가족과 생이별을 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채씨는 『남쪽에서 재혼을 하셨다가 82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살아 생전에 가끔씩 술을 드시면 「내가 너희 엄마와 동생들을 데리고 왔어야 하는건데…」하시며 눈물을 흘리곤 하셨다』고 털어놓았다. 최석영기자SYCHOI@SED.CO.KR 한영일기자HANUL@SED.CO.KR 입력시간 2000/07/27 20:23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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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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