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관료를 위한 변명


세 부류의 전직 고위 관료가 있다. 첫 번째는 로펌으로 간 케이스다. 공직자윤리법상 재취업 제한규정이 허술할 때 일찌감치 이직한 부류다. 퇴직 직전의 직급과 재취업 후 역할에 따라 액수의 차이가 있지만 연봉은 대략 3억원쯤 된다. 공직자 시설에는 꿈도 못 꿀 엄청난 보상이다. MB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로펌 출신 전직 관료들의 관가 컴백이 있었건만 이제는 어림도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른바 '관피아'의 적폐가 새삼 드러난 결과다. 두 번째는 대학이나 연구원에서 와신상담하는 부류다. 그나마 대우가 좋은 석좌교수라 해봐야 연봉이 1억원 될까 말까다. 특임 교수는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강의를 맡지 않으면 연구실조차 내주지 않는 대학도 있다. 그래도 때를 잘 만나면 컴백할 수 있겠거니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다. 세 번째 부류는 산하기관으로 내려간 경우다. 보수는 로펌과 대학으로 간 부류의 중간 수준 쯤이다. 역시 관가 복귀 가능성은 열려 있는 편이다.

위에서 열거한 정도라면 그래도 아쉬울 게 없다. 어느 정도 품위를 지킬 수 있고 이런저런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 여건이 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들의 재취업 환경은 극도로 나빠졌다. 6·13 개각에서 관료 출신을 배제한 것이나 재취업 승인을 받고도 여론의 눈총을 받자 포스코가 전직 관료 채용을 포기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지금의 고위 관료들은 막차를 탔다는 불안감에 휩쓸려 있다. 이러다간 놀면서 공무원연금 하나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일반 국민의 2배가 넘는 월 350만원가량의 연금이면 족하지 뭘 더 받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지만 배고픔은 참아도 배 아픈 건 참지 못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관가에 나도는 1급 일괄 사퇴설


연배에 따라, 고시 합격 시기에 따라 재취업 환경이 이토록 달라지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만 60세인 정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중앙부처에서 정년까지 버틸 배짱 있는 공무원은 그리 많지 않다. 현실적인 장벽도 있다. 고위공무원단 소속 국장은 보직에서 제외되면 공무원연금 수령 때 불이익을 받는다. 버티기보다는 옷을 벗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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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관가는 1급 일괄 사표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막연한 관측이지만 관가에서는 제법 설득력이 있는 모양이다. 신임 장관들이 취임할 즈음 관피아 개혁 차원에서 그렇게 할 거라는 시나리오다. 일할 맛이 안 난다는 볼멘소리를 개혁 저항으로 치부할 일만도 아니다.

관피아의 분탕질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관료사회의 적폐가 어디 해운 분야만 국한될까. 한 줌도 안되는 권한으로 민간에 군림하다 퇴직 후엔 현직이 밀어주고 당겨주는 유착관행을 새삼 들먹일 것도 아니다. 잘못되고 비정상인 관행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관피아의 재취업 자리를 누구로 채울 것이냐는 현실적인 난제다. 이것은 관피아 적폐 해소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퇴로를 틀어막아 놓고 정년을 보장하지 않으면 50대 중반 공직자는 그야말로 쪽박 신세다. 대체 가능한 인재풀이 널린 것도 아니다. 적폐의 관행은 정치권 백수들이 한 수 위지 덜하지는 않을 터이다.

개혁 대상인 동시에 국정수행 손발

보다 근본적 문제는 국가개조의 접근 방식이다. 국가재난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공무원 체질을 개선하는 게 국가개조인지 의문이다. 참극의 근본 원인인 인간 경시 풍조와 이기심에 대한 더 큰 틀의 성찰이 있어야 한다. 불과 몇 주 만에 정부조직을 바꾸고 관료 배출구를 막아버리겠다고 한다. 그것이 국가개조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데도 말이다. 5년 한시 권력으로 국가개조라는 엄청난 일을 완수하기란 현실적으로도 무리다.

관료사회가 영혼이 없어진 지는 오래다. 5년마다 바뀌는 대통령 어젠다에 그들은 창조적 정책대안 제공집단으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한다. 더구나 공직사회는 개혁의 대상인 동시에 대통령 어젠다를 수행할 전문집단이다. 그런데도 관피아라는 용어가 박근혜 대통령 입에서 나오자 그들은 적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국정과제를 추진할 수족을 정치권력 스스로 부정한 꼴이나 다름없다.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적폐든 뭐든 척결해야 수긍할 것이고 그래야만 개혁은 지속 가능하다. 일회성 개혁 몰이는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런 정도라면 관피아 적폐는 진작 해결됐을 것이다. 관피아라는 프레임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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