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멋은 맛이 되고 향은 흥이 된다

■ 한식에 어울리는 도자기 상차림<br>이천·여주등도자기 축제 한창<br> 한식 세계화 따라 관심 폭발<br> 토기-웰빙청자-고급식단 제격

조상권의 안다미로 4인용 구이세트 상차림

민승기의 비빔밥 상차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요리를 해도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소용없다. 그릇을 선택하는 것이 번거롭다고 말하지 말라. 그릇을 사랑하고 다루는 일을 즐겨야 하며, 그릇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요리와 하나로 맺어진다. 그릇이 즐거운 것이 된다면 요리도 즐거운 것이 된다." 오늘날 일본 요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천재 예술가이자 전설적인 요리인 기타오지 로산진이 한 말이다. 만화 '맛의 달인'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일본 최고급 요리 요정 '호시가오카사료'의 문을 열면서 맨먼저 몇몇 가마에 그릇을 주문했다. 사발, 젓가락 받침, 접시, 술병, 물잔, 주전자, 차 사발, 냄비까지 디자인해 의뢰했고 문양은 직접 그려넣어 5,000점 이상의 식기를 준비했다. 하지만 주문 제작한 그릇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로산진은 반 년 후 가마를 만들어 그릇을 직접 제작했다. 최근 출간된 '로산진:요리의 길을 묻다'(진명출판사 펴냄)의 저자 박영봉 씨는 "음식과 식기가 완성하는 요리 예술에 힘입어 일본 요리는 세계인의 시선을 끌며 계속 진화중인데 비해 일본에 도자기 문화를 전한 한국인의 후예로서 착잡했다"며 "로산진이 두 나라 요리와 그릇 문화의 차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키워드"라고 소개했다. 한식 세계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음식을 담는 도자기 그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식은 한 상에 여러 종류의 음식과 반찬을 한번에 차려내는 특성이 있어 담는 그릇의 질감과 색채에 따라 다양한 상차림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도자기의 본고장인 경기도에서는 제24회 이천도자기 페스티벌(4월 24일~5월 16일), 제13회 광주왕실도자기축제(4월 23일~5월 9일), 제22회 여주도자기축제(4월 24일~5월 9일) 등 도자기 축제가 한창이다. 한식 세계화 붐에 힘입어 이천도자기 페스티벌에서는 '한식의 세계화와 명품 식기'를 주제로 한 '이천도자트렌드공모전' 수상작들이 전시되고 있다. 국내 내로라 하는 도예가 1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 1월 개최된 이 공모전에서는 한식 상차림의 기본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국 전통의 멋과 현대적인 감각을 동시에 살린 작품들이 상을 받았다. 수상작들을 통해 한식 상차림의 정석에 대해 알아봤다. ◇한식에 어울리는 우리 상차림 이천도자트렌드공모전 심사위원인 유광렬 해강고려청자연구소 대표는 "화려한 색깔과 다양한 모양을 지닌 중국 도자기, 세심한 손재주에서 펼쳐진 정교한 디자인이 특징인 일본 도자기와 비교해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은 음식, 계절, 날씨, 장소 등 주위 환경과 적절히 어우러지는 소박한 멋과 자연미에 있다"며 "이기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이 한식 상차림과 한국 도자기의 근본 정신"이라고 말했다. 한식은 특히 도자기의 재료와 질감에 따라 상차림을 달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토기의 경우 진한 흙색과 거친 질감이 살아 있어 웰빙 식단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상차림에 어울리며 투명한 비취색을 갖고 있는 청자는 색감이 우아하고 무늬가 섬세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그만이다. 단순하지만 깨끗한 느낌을 주는 백자는 색상이 다채로운 음식을 담을 때 활용하면 좋으며 특히 분청사기는 백토의 흰빛과 붉은 흙빛이 조화를 이루는 만큼 소박하고 소탈한 멋을 낼 때 쓰면 멋스럽다. 백자는 밝고 시원한 느낌이 강해 여름에 사용하면 좋다. 봄과 가을에는 청자를 활용하면 은은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멋스럽게 살릴 수 있다. 유약을 바르지 않아 투박한 느낌이 살아있는 옹기는 요즘 선호하는 자연주의 식탁으로 상차림할 때 안성맞춤이며 추운 겨울에 사용하면 따뜻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담는 음식의 색에 따라 맞는 도자기도 따로 있다. 색감이 풍부하고 화려한 음식은 화려한 도자기를 피하는 것이 좋다. 어둡고 진한 색깔의 음식은 흑색이나 진갈색의 도자기보다는 흰색 도자기에 담아낸다. 한 상에 갖가지 반찬과 밥을 한꺼번에 차려 내놓는 한식은 테이블 장식을 할 때도 지저분하거나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꽃 장식은 될 수 있으면 크고 화려한 것은 피하고 종지나 찻잔 같은 작은 장식을 활용해 아기자기한 맛을 주는 게 좋다. ◇음식에 따른 상차림 방법 예시 ▦비빔밥=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나물이 어우러지기 때문에 화려하지 않는 그릇을 선택한다. 고명, 나물, 고추장 등 함께 섞어 먹을 재료를 각각 작은 종지에 담아 차려내면 더욱 깔끔한 맛을 살릴 수 있다. 또 전통적인 비빔밥이라고 하더라도 분청 등 세련된 감각의 도자기로 연출하면 현대적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번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민승기 민승기공방 대표는 "상차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와 통일성이다. 분청의 경우 전통적인 기법이라 할지라도 흰색과 청색이 조화롭게 드러나 현대적인 감각으로 코디할 수 있다"며 "비빔밥 그릇을 비롯해 긴 접시와 다양한 톤과 크기의 나물 그릇, 국그릇, 물잔, 종지 등을 구성하면 상을 고급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이용=화로를 활용하면 좌식 위주의 한식 테이블에서 높이와 부피감을 줄 수 있다. 화로를 선택할 때에는 상대방의 시선을 가리는 높이는 피한다. 이번 공모전의 은상 수상작인 조상권 씨의 '안다미로 4인용 등심구이 세트'는 혼합토와 백토를 적절히 사용해 붉은색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특히 화로를 가운데 두고 촛대나 냅킨을 양 옆에 배치하면 높이의 균형을 맞추면서도 안정감을 준다. 접시, 종지, 촛대 등 포인트가 될만한 그릇의 경우 붉은색을 입힌 도자기를 활용하면 세련된 멋과 맛이 살아난다. ▦다과=차와 과일 등을 내는 다과 상차림은 어떤 도자기를 활용하느냐에 따라 귀여운 맛과 우아한 맛을 동시에 살릴 수 있다. 그릇 수가 적은 상차림인 만큼 전체적인 통일성을 강조해 차리면 오히려 깔끔함 상차림이 가능하다. 백소연도예공방의 백소연 씨의 작품 '오후의 휴식'은 다과상의 실용성과 단아한 한국의 멋을 강조했다. 깨끗하고 단아한 전통 백자로 통일성을 주고 둥근 합과 3단 합, 3인 다기 세트로 상차림을 연출했다. 백자 식기는 담긴 음식의 빛깔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크기와 색감이 다양한 다과 상차림에 적합하다. 고급스러운 다과 상차림을 원한다면 청자를 활용하는 것도 권할만하다. 박병금 씨의 작품 '모란문식기'는 상감 기법으로 도자기를 조각해 우아한 멋을 살렸다. 찻잔의 경우 잔을 흔들면 맑고 청아한 방울 소리가 나도록 제작해 한층 고풍스럽다. 청자의 우아한 매력에 붉은색 꽃무늬를 넣어 단아하고 화려한 멋까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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