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 3환로 동북쪽에 위치한 궈잔(國展)센터. 각종 전시회가 상시로 열리는 이곳에서 지난 14일 취업박람회가 열리자 4만여명의 석ㆍ박사 구직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석ㆍ박사 4만여명은 베이징 지역 석ㆍ박사의 70%가 넘는다. 유럽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는 여성구직자 추이(崔)씨는 “하루 종일 5개 전시관의 700여개 업체를 모두 둘러봤다. 그런데 상장기업 1곳만 월급이 2,500위안(약 50만원)이라고 적혀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상담 후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석사 구직자 양(楊)씨는 “오늘 두 업체 앞에서 긴 줄을 섰지만 이력서조차 받지 않더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개최된 ‘석ㆍ박사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는 모두 4만여명. 그러나 700개 업체가 제시한 일자리는 1만4,228개로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월급도 형편없다. 개혁ㆍ개방 30주년을 맞아 중국 정부는 4조위안에 달하는 ‘중국판 뉴딜’ 시동을 통해 대규모 일자리가 창출되고 사회복지 시스템이 확충된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극심한 민생고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비치는 중국사회는 한낱 ‘액자 속에 갇힌’ 신기루일 뿐이다. ◇꿈을 잃은 구직자들=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중국경제의 급랭으로 앞으로 중국에서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전쟁은 더욱 격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과학원이 발표한 2009년도 ‘경제청서’에 따르면 올해 말 100만명의 대졸자들이 취업을 못한 상태에서 2009년에는 611만명의 대학생이 취업시장에 나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중국 교육부는 올해 중국의 대학졸업생은 559만명으로 지난 2007년에 비해 64만명 늘어났고 2009년 졸업생 규모는 올해보다 52만명 늘어난 611만명으로 추산, 해가 갈수록 취업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장리빈(張麗賓) 인력자원사회보장부 노동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올해 중국 대졸자의 실제 취업률은 7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면서 “2009년 상반기의 취업상황도 낙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직 농민공들의 슬픈 귀향=돈벌이를 찾아 농지를 버리고 도시로 나선 2억여명의 중국 농민공(農民工)들은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일자리를 잃은 채 속속 귀향길에 오르고 있다. 농민공들의 귀향 행렬은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10월 초부터 시작돼 최근 실물경기 침체로 문을 닫는 공장이 늘어나면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부도가 나거나 폐업하는 공장들이 속출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농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공이 내년까지 2,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면서 농민공들의 절망이 커다란 사회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그렇지 않아도 도ㆍ농 간 빈부격차로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한 농민공들이 일자리까지 잃으면서 폭도나 반정부 세력으로 돌변할 것을 우려해 지원책을 마련하는 한편 감시망 가동에 들어갔다. ◇‘1~2월 위기설’ 확산=고학력자와 저소득층을 가릴 것 없이 실업공포가 증폭되면서 중국 지도부 내부에서는 ‘1~2월 위기설’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산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중국의 금융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수억명의 중국인이 고향으로 이동하는 내년 춘제(春節ㆍ설날) 연휴까지 주가와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지 못하고 광둥성 선전지구 등지 공장의 연쇄 도산을 저지하지 못하면 중국의 중간층이 붕괴해 폭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간 중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고 상하이종합지수를 적어도 2년 전 수준인 2,400선, 가능하다면 3,000선까지 회복시키지 못하면 중간층이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광둥성 일대의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농민공들의 임금체불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불안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이 지역에서는 기업도산과 임금체불이 증가하면서 성난 노동자들의 항의와 폭동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판 뉴딜’의 허와 실=중국 지도부는 최근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열어 ‘내수 확대를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쪽으로 중국의 내년도 경제정책 노선을 확정했다.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통화 완화정책, 농민수입 증대, 경제 구조조정, 개혁개방 심화, 사회안정 유지 등을 내년 경제운용의 5대 중점과업으로 채택한 중국 지도부는 연말이 다가올수록 더욱 더 강도 높은 세부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미 4조위안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중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하는 등 실업자 급증에 따른 사회불안을 잠재우기에 부심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및 실물경제 위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 명분이지만 속내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중국 내부사정이 더 고려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관건은 정책의 실효성 여부. 공산당 일각에서까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저우톈융 중국공산당중앙당교 연구원은 “중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7.5%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가난하고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늘어나 분노에 찬 실업자 증가가 사회불안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중국 정부가 이에 대처해 무엇보다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재정지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개방 30년을 맞아 최악의 경제위기에 직면한 중국이 한꺼번에 쏟아진 각종 마찰음을 얼마나 조화롭게 잠재우며 조화사회로 나아갈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