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9월 16일] 선조의 두 얼굴

조선왕조 14대 임금 선조는 임진왜란 때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이 탄금대에서 일본군에게 무력하게 패하자 이성을 잃고 만다. 도성사수를 약속하고도 소수의 측근만 데리고 한양을 탈출한 데 이어 급기야 중국으로 망명하려고까지 했다. 12척의 배로 133척이나 되는 일본 수군을 물리친 이순신의 명랑해전에 대해서도 별 볼일 없는 전과라 폄하할 정도로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암군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의 선조에게서는 전혀 다른 군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명종이 후손 없이 승하하자 16살의 이균은 후궁의 손자인데도 불구하고 똑똑하고 행실이 올바르다고 인정받아 임금에 올랐다. 평소 학문을 즐겼던 그는 즉위 이후 조선 최고의 유학자인 이황ㆍ기대승ㆍ이이에게 차례로 과외를 받으며 최고의 지식을 접한다. 즉위하자마자 청탁하러 찾아온 측근을 내쳤고 환관의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재위 중 사서오경을 한글로 번역하도록 명했으며 경연에서는 예리한 변론과 질문을 하는 바람에 신하들이 참여하기를 꺼릴 정도의 명민함을 보였다.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며 호조판서였던 율곡을 병조판서로 기용했고 훈구의 전횡과 사림의 독선을 중화하려 노력했고 인재발굴에도 관심을 기울여 이순신ㆍ권율 같은 구국의 영웅을 파격적으로 기용했다. 그의 묘호(종묘에 올리는 공식 이름)에는 공을 세운 임금에게 붙이는 조가 붙어 있는데 이는 조선왕조에서 태조ㆍ세조에 이어 세 번째의 일이다. 두 사람이 정말 동일인물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다르다. 큰 위기가 임진왜란 이전 명민했던 군주를 갑자기 암군으로 바꿔 버린 대표적인 사례다. 묘하게도 우리는 10년마다 큰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임진왜란 같은 군사적 위기 대신 경제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1987년에는 증권시장에 블랙먼데이가 있었고 1997년에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꼭 10년 뒤 유럽 헤지펀드의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폐쇄로 정점에 달한 뒤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위기는 이전 것보다 내용이 나빠지고 있다. 블랙먼데이는 주가 폭락에 그치며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아시아 금융위기는 지역경제에만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진원지가 미국이며 충격도 범세계적이다. 100년만의 위기를 맞아 한국 경제에 제2ㆍ3의 선조가 등장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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