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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진찰을 둘러싼 논란이 최근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됐다. 전화 등의 통신수단을 이용한 진찰도 직접진찰에 해당된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특히 전화진찰에 앞서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고 대면진찰을 했는지 여부와는 상관 없이 전화진찰에 따른 처방전 발급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전화진찰이 건강보험 요양급여 청구 행위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건보 적용에 제한이 따른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서울 동대문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 2006년 1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자신의 병원에서 한 차례 이상 진료를 받고 살 빼는 약을 처방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모두 672차례에 걸쳐 전화 통화로 진료한 후 이들에게 처방전을 작성해준 혐의(의료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 제17조 1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서 규정한 직접 진찰에 대해 "진료 시 직접 환자와 대면을 하지는 않지만 의사가 전화나 기타 통신매체 등을 통한 진료를 하는 경우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 재판부도 "전화를 받은 상대방이 의사인지 의사가 아닌지, 전화를 하는 상대방이 환자 본인인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약물의 오남용의 우려가 매우 커질 수 있는 등 전화 진찰을 직접진찰에 포함시킬 경우 진료의무가 소홀해 질 가능성이 있다"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최근 A씨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전화 진료도 직접진찰에 해당돼 전화 진료 후 처방전을 발급한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첫 판례다. 의료법 17조 1항이 처방전 등의 발급주체를 제한한 조항이지 진찰방식의 한계나 범위를 규정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방법에는 시진, 청진, 촉진, 타진 기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할 것인데, 의료법 17조 1항은 직접 진찰이 대면진찰을 한 경우만을 의미한다는 등 진찰의 내용이나 진찰 방법을 규제하고 있지는 않다"고 판시했다.
의사가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전화나 화상 등을 이용해 환자의 용태를 스스로 듣고 판단한 후 처방전을 발급했다면, 비록 전화 등을 통한 진찰의 방법이 환자의 상태를 고려할 때 부적절할 수는 있지만 형사처벌까지 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첨단 기술의 발전 등으로 현재 세계 각국이 원격의료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대법 판결 후에도 대면 진료 없이 바로 전화 진찰을 한 경우까지 처벌 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A씨의 경우 한차례 대면 진료를 한 이후 전화 진료를 했기 때문에 대면 진료 없이 바로 전화 진료만 해도 되는 지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1차 대면 진료 후 전화진료를 한 것에 대한 판단"이라며 "대면진료 없이 전화로만 진료한 뒤 처방전을 발급한 경우까지 이번 판결이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직접 진찰에 전화 진료가 포함되는 지 여부는 A씨 사건 이후 대법원의 추가 판결이 나오면서 명확해 졌다.
서울 강서구에서 정신과를 운영하는 B씨는 2009년 3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전화진찰을 한 후 전화진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해 455만원을 챙긴 혐의(사기)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신과 전문의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대면 진료 없는 전화 진찰도 직접 진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의 판례를 언급하며 "원칙상 전화나 화상 등을 이용해 진찰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B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옴에 따라 그간 의료업계에 논란이 됐던 전화진찰 후 처방전 발급 행위를 더 이상 법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됐다.
다만 대법원은 전화진찰을 한 후 이를 알리지 않고 요양급여를 청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의한 보건복지부장관의 고시가 내원을 전제로 한 진찰만을 요양급여의 대상으로 정하고 있고 전화 진찰이나 이에 의한 약제 등의 지급은 요양급여의 대상으로 정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전화 진찰이 '직접 진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요양급여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없다"며 "B씨가 전화 진찰을 요양급여대상으로 돼 있던 내원 진찰인 것으로 꾸며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것은 기망행위로서 사기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3자 명의로 처방전을 발부한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가 직원 명의로 향정신성의약품처방전을 발급한 후 치료 목적으로 자신에게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에 대해서는 "제3자 명의로 처방전을 발부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