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5점 VS 59.40점'
올해 초 은행 혁신성 평가에서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각각 획득한 점수다. 총 100점 배점 가운데 기술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하는 은행 혁신성 평가에서 지난해 하반기 압도적인 기술금융 실적을 자랑한 신한은행은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반면 국민은행은 바닥을 기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만에 두 은행의 위상이 바뀌었다.
국민은행이 올해 초부터 기술금융 확대에 전방위적으로 나서면서 신한은행의 실적을 단숨에 추월, 3월 말부터 시중은행 1위 자리에 올랐다. 다급해진 신한은행은 4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1조1,132억원 규모의 신규 실적을 올리며 다시 국민은행 추격에 나섰다. 말 그대로 쫓고 쫓기는 전쟁이다.
20일 금융계에 따르면 오는 7월 금융당국의 두 번째 은행 혁신성 평가를 앞두고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1등 은행'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이고 있다. 진검 승부가 벌어지는 분야가 바로 기술금융이다.
금융당국의 은행 혁신성 평가는 기술금융 확산(40점), 보수적 금융관행 개선(50점), 사회적 책임 이행(10점)이 주요 평가 항목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우수 은행에는 신·기보 출연료 감면, 온랜딩 공급 한도 확대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어지고 미흡한 은행에는 페널티가 부과될 예정이다.
리딩뱅크 자리를 다투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입장에서는 혁신성 평가 수준이 단순히 인센티브 혜택을 떠나 자존심 싸움이다. 양 은행 모두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행장이 바뀐 만큼 각오가 대단하다.
이런 가운데 국민은행의 대변신은 양 은행 간의 치열한 경쟁을 촉발시켰다.
지난해 12월 말 7,464억원에 불과했던 국민은행 기술금융 실적은 4월 말 4조 2,947억원으로 올해에만 3조5,483억원이 늘었다. 윤종규 KB지주 회장 취임 이후 안정을 되찾은 조직 분위기에 더해 1,100여개에 달하는 국민은행 지점 숫자가 위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국민은행의 성장은 단순한 양적 성장만은 아니다. 올 2월 부서로 승격된 국민은행 기술금융지원부는 올해 4월까지 접수된 총 7,000여건의 기술보고서(TCB 평가)를 모두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배재억 국민은행 기술금융지원부장은 "앞으로 3~5년 후 부도가 나는 기업이 생기면 기술보고서상의 어떤 항목이 유의미했는지 추적할 수 있다"며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KB의 지속 가능한 기술금융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실적을 바탕으로 느긋해 보이던 신한은행은 다시 바짝 군기가 들었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 신한은행의 기술금융 실적은 1·4분기 실적(1조140억원)을 상회 한다. 본부 차원에서 지점에 실적 목표치를 전략적으로 부여하지 않고는 이런 실적이 나오기 힘들다. 4월까지 누적 실적은 3조8,812억원으로 국민은행에 약 4,000억원가량이 못 미친다.
신한은행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이미 상당한 실적을 거둔 신한은행 입장에서는 기준 중기대출 중 기술금융으로 전환할 수요가 많이 남지 않았고 신규 기업 대출의 경우 분명한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KB에 비해 실적이 크게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2·4분기부터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은행의 치열한 경쟁을 바라보는 금융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대형 은행 간 경쟁을 통해 기술금융이 빠르게 정착돼간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은행 간 자존심 싸움으로 '무늬만 기술금융'인 중기 대출이 지나치게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술평가기관의 기술보고서는 여전히 은행에 믿음은 주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기술보고서를 활용, 얼마나 체계화된 은행 자체적 기술금융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냐에 진짜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