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인 대가는 치렀지만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자식들ㆍ직원들과 주주들에게 용서를 빌지 않고는 밤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하겠더군요.” 최근 모 일간지에 과거의 비자금 조성 사실을 고백하고 사과의 글을 실어 화제가 된 홍범식(47) 신일건업 부회장. 그는 지난 2003년 서울 논현동의 한 빌라에 현금 등 90억원의 비자금을 숨겨 보관하다 검찰에 적발된 이른바 ‘90억원 돈침대’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었다. 그는 최근 돈다발 사진과 함께 게재한 사과문에서 자세한 비자금 조성 방법까지 밝히며 “상장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눈앞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해 경영자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고 반성했다. 왜 2년이 넘었고 이미 옥고까지 치른 그가 다시 자랑거리도 아닌 옛 일을 꺼내 스스로 채찍을 들었는지 궁금했다. 직설적으로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내년이면 우리 회사는 창립 50주년을 맞습니다. 저 하나의 잘못으로 회사나 주주들에게 짐을 지워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은 그가 뒤늦게 참회의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친구들이 수군대는 것 때문에 창피해서 공부고 뭐고 하기 싫다는 딸아이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자식들에게 정말 큰 죄를 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홍 부회장은 사과문을 게재한 후 사업을 하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지인들이 비자금이란 게 마약과 같아서 끊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기에 “마약은 나쁜 것이다. 힘들고 괴롭더라도 끊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홍 부회장은 “이제야 홀가분하다”며 “돈이 필요하면 회사를 열심히 키워서 배당을 많이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최근 40억여원을 들여 사내에 ‘공유정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공사진행 현황이나 자금의 흐름 등 회사의 모든 상황을 직원들이면 누구나 접속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더이상 비자금 같은 것을 만들지 않고 ‘깨끗한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다. 2월 초부터는 경기도 양평에 연수원을 건립할 계획이다. 직원들이 마음껏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겠다는 목적에서다. “경영목표는 하나입니다. 회사를 키워서 신일건업 직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가 새로운 50년을 맞는 중견건설업체를 어떻게 키워나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