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리빙 앤 조이] 상처받은 영혼 사라진 영웅들

상성:상처받은 도시

80년대 홍콩느와르와는 다른 독자적인 매력을 가진 새로운 영화‘상성: 상처 받은 도시’ .


‘영웅본색’으로 대표되는 80년대 홍콩영화를 특징짓는 것이 남성미와 비장미였다면, 90년대 이후 홍콩영화를 흐르는 대표적인 정서는 외로움이다. ‘중경삼림’ 등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이후의 홍콩영화는 고층빌딩이 촘촘히 들어차 있는 대도시 홍콩에 살아가는 개인의 고독에 집중했다. 여기에 97년 홍콩반환에 맞물린 막연한 세기말적 불안감까지 가미됐다. 2003년 만들어진 ‘무간도’는 이런 90년대 이후 홍콩영화의 정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경찰과 갱이 서로 상대방의 조직에 비밀리에 침투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비록 외형적으로는 80년대식 홍콩느와르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그 내면에는 정체성의 혼란과 이에 따른 고독, 그리고 상처의 정서가 깊게 흐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의리에 목숨을 거는 80년대 홍콩느와르와는 다른 독자적인 매력을 가진 새로운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이 무간도의 감독 류웨이장(유위강ㆍ劉偉强)ㆍ마이자우후위(맥조휘ㆍ麥兆輝) 감독이 내놓은 신작 ‘상성(傷城): 상처 받은 도시’ 역시 담고 있는 정서만큼은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는 상처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이들의 내면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함께하고 서로 아껴주지만 끝내 공유할 수 없는 가슴 아픈 비밀을 가진 사람들의 슬픔이 영화 한편을 가득 채운다. 영화의 주인공은 서로 깊은 신뢰를 가진 형사반장 유정희(량차오웨이ㆍ梁朝偉)와 아방(진청우ㆍ金城武). 온 도시가 흥청망청하던 크리스마스 밤 아방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친구를 발견하고, 이 충격에 경찰을 떠난다. 유정희는 이런 아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로부터 3년 후. 유정희는 종군기자인 숙진(쉬징레이ㆍ徐靜雷)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반면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아방은 술에 쩔은 사립탐정이 돼 방황을 계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숙진의 아버지와 그의 집사가 정체 모를 괴한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정희를 비롯한 경찰은 돈을 노린 강도들의 범행으로 결론 내리나, 숙진은 이런 경찰의 수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아방에게 사건의 수사를 의뢰하는 숙진. 이렇게 해서 아방은 이 살인사건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수사를 계속하면서 조금씩 유정희와 숙진이 복잡하게 얽힌 슬픈 비밀이 사건의 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진범을 초반에 드러내고, 이후 이 범인이 진짜일까 의구심을 갖게 하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관객을 미스터리로 끌어들인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상성‘의 기둥줄거리 자체는 신선한 것이 못 된다. 담고 있는 미스터리와 반전이 촘촘하지 못하고, 충격 또한 강렬하지 못한 면도 많다. 하지만 기존 미스터리 영화의 문법을 뒤집은 이 같은 영화적 설정 덕분에 영화의 스토리는 나름의 생명력을 얻는다. 진상이 모두 드러날 때까지 관객이 사건의 진범과 사건의 동기를 의심케 하는 연출이 영화에 적절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영화 전편을 흐르는 슬픈 정서를 담아낸 영상은 이 영화의 재미를 한껏 높이는 또 다른 요소. 인물의 고독과 불안한 마음을 부각시키는 효과적인 화면을 통해 관객들은 유정희와 아방이라는 두 고독한 남자들의 내면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과 정신적 공감… 슬픔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었다" ■ 25년만의 첫 악역 량차오웨이 인터뷰 영화 '상성'은 우리에겐 반듯한 이미지로 각인된 량차오웨이(양조위ㆍ梁朝偉)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 악역이지만 많은 내면적 갈등을 가지고 있는 유정희란 인물을 25년 연기경력의 베테랑다운 내공으로 소화해 낸 그를 홍콩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상성'은 량차오웨이가 '무간도'에 이어 유위강ㆍ맥조휘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영화 속 유정희란 인물에 대해 그는 "깊은 슬픔을 내면에 간직한 인물"이라면서 "악역이지만 누구라도 그의 입장이 된다면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극중 진청우의 역할인 사립탐정 아방 역에 내정돼 있었던 량차오웨이는 악역인 유정희 역할을 감독에게 제의 받고 오랜 고심 끝에 역할을 수락했다. 하지만 영화인생 25년 만에 처음으로 악역을 맡았다는 량차오웨이는 "악역을 연기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유정희의 깊은 슬픔과 분노를 내면화하기 위해 그의 어린시절부터 극중 나이인 38세까지의 삶을 머리 속에 많이 그려봤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렇게 슬픔을 간직한 인물과 정신적으로 공감을 많이 한 덕분에 촬영 후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유정희란 인물과 많은 정신적 공감을 한 덕분에 이 인물의 슬픔에서 빠져 나오는 데에 많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다행히도 새로운 작품인 '적벽' 촬영이 이어져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25년이란 세월동안 연기 생활을 하면서 홍콩 영화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함께한 량차오웨이는 "90년대 이후 홍콩영화의 부진 때문에 많은 홍콩영화인들이 세계 영화계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이를 꼭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 "한국 속담에도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홍콩을 떠난 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흡수해 언젠가 다시 홍콩영화계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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