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칼라시니코프의 두 가지 교훈

권홍우 논설실장


전설이 죽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구 소련의 총기 설계자로 핵폭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AK-47소총을 만든 그가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두고 눈을 감았다. 향년 94세. 천수를 누린 그보다 AK-47은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며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총의 이름을 자동에서 A, 그의 이름에서 K를 떼어내 첫 생산품이 나온 1947년과 결합시켜 AK-47이라고 붙였으니 '칼라시니코프'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불릴 것 같다.


△AK-47이 사상 첫 돌격소총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선보인 SGT-44가 돌격소총의 시초다. 좀 더 앞서 나왔거나 히틀러가 대량생산을 승인했다면 전쟁의 흐름을 바꿨을 것이라던 명총이었으나 독일의 패전으로 빛을 못 봤다. 결정적으로 생산공정이 복잡하고 획득단가도 높았다. 소련이 한사코 부인하고 작동원리에 차이가 있지만 SGT-44과 AK-47의 외형은 놀랍도록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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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칼라시니코프가 독일제 돌격소총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외형은 유사해도 성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점이다. 생산공정이 단순하고 단가도 싼데다 고장도 거의 없어 AK-47은 전세계에 깔렸다. 북한도 1958년부터 58식자동보총이라는 이름으로 찍어낸 이 총의 누적생산량은 약 1억정. 라이벌격인 M-16시리즈의 누적생산량 800여만정을 훨씬 웃돈다. 칼라시니코프는 얼마나 벌었을까.

△평생을 빈곤하게 살았다. M-16의 설계자 유진 스토너가 돈 방석에 앉은 것과 반대다. 칼라시니코프는 내심 섭섭했겠지만 부상 당한 전차병으로 조국을 위해 병상에서 AK-47의 설계도를 그렸다는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우리 사회라면 기술학교를 졸업한 20대 초반 청년이 그런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를 러시아 창조적 천재의 상징'으로 꼽았다. 그가 남긴 두 가지 흔적, 애국심과 개천에서 나오는 천재가 참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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