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국내 증시에 투자하기 위해 위탁운용사까지 선정해놓고도 자금 집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운용 총책임자 교체 등 CIC 내부 사정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내 증시 부진도 중국 국부펀드가 투자를 미루는 한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CIC는 지난해 3월 국내 증시에 투자하기 위해 삼성자산운용과 트러스톤자산운용ㆍ골드만삭스자산운용 3곳을 위탁운용사로 선정했으나 2년이 다 되가는 지금까지 자금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위탁운용사 선정 당시 CIC는 1억~3억달러 규모로 한국 증시에 투자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어서 위탁운용사들도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관련 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CIC가 아직까지 왜 자금 집행을 하지 않고 있는지 우리도 알 수 없어서 현재 CIC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자금 집행이 있을지조차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CIC와 어깨를 견주는 노르웨이국부펀드(GPFG)는 최근 트러스톤자산운용을 통해 한국 증시에 3억달러를 투자했다는 점이다. GPFG는 지난 9월 국내 증권사를 통해 계좌를 개설한 뒤 트러스톤자산운용을 통해 한국 증시에 약 3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GPFG의 투자 운용을 관리하는 노르웨이투자관리청(NBIM)의 윙베 슬륑스타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이 이례적인 통화정책을 잇달아 발표해 투자 수익률 악화가 우려된다"며 "앞으로 신흥국 증시 투자 비중을 늘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CIC는 투자 방침을 밝힌 이후 2년 가까운 시일이 흘렀지만 투자에 나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CIC가 한국 투자를 머뭇거리는 주된 요인으로 CIC 윗선 교체를 꼽고 있다. CIC는 지난해 7월 부회장 겸 운용 부문 총책임자를 교체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전임 운용역들이 추진했던 한국 증시 투자 계획이 서랍 속으로 도로 들어갔다는 게 국내 업계의 분석이다.
한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중국은 윗선이 바뀌면 그동안 준비했던 투자 계획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게 다반사"라며 "국내 위탁운용사를 선정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가는데 여전히 자금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사실상 현재 계약을 맺은 위탁운용사를 통한 자금 집행은 무산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도 "현재 중국의 지도부 교체라는 내부 변수가 있어 자금 집행을 서두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윗선이 교체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무 말도 없는 것은 현행 집행부가 한국 증시 투자에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한국 증시에 대한 전망이 좋아진다면 또 다시 위탁운용사를 선정해 자금 집행을 할 수 있겠지만 현재 계약을 맺은 위탁운용사를 통한 자금 집행은 물 건너 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GPFG와 달리 한국 증시를 저평가하는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GPFG 입장에서는 한국 증시가 매력적일 수 있지만 CIC가 보기에 다른 신흥국 대비 한국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한국 증시는 중국 증시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한국보다는 다른 신흥국을 투자처로 삼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