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가 남성 편향적이었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단순히 성(姓)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과학의 질을 높이는 시도입니다."
'2015 아시아태평양 젠더 서밋' 개최를 위해 방한한 엘리자베스 폴리처(사진) 포샤 소장은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학기술계에 부는 젠더 혁신 운동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폴리처 소장은 물리학과 정보통신과학을 전공한 영국인 과학자이자 이 분야의 젠더 혁신 권위자다. 지난 1997년 영국의 다른 여성 과학자들과 함께 비영리기관인 포샤를 설립해 과학기술 분야의 성 평등을 위한 연구와 각종 활동을 진행해왔다. 그는 과학기술계의 성 평등과 관련한 국제 학술대회인 '젠더 서밋'의 공동 주최자이기도 하다. 젠더 서밋은 2011년부터 매년 개최됐으며 올해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한국연구재단·한국과학기술평가원과 함께 오는 26∼28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2015 아시아태평양 젠더 서밋'이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과거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수준이 낮고 남성이 주축이 됐던 탓에 과학이나 의학 연구 역시 남성을 표준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공공장소의 쾌적한 실내온도 기준으로 규정된 섭씨 21도가 사실은 신진대사가 높은 남성에게만 적정하다는 연구 결과, 병원에서 사용하는 X레이 강도가 건강한 남성을 표준으로 설정돼 여성은 필요 이상으로 과다 노출된다는 내용 등은 대표적인 성차별 사례다. 특히 과학기술 연구에서 생물학적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성(sex)'이라는 유전학적 용어 대신 사회적인 환경과 훈련에 따라 남녀의 기질이 형성된다는 측면을 강조한 용어인 '젠더(gender)'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젠더 혁신의 핵심이다.
폴리처 소장은 "남성과 여성의 염색체 차이는 화학작용이나 방사능·면역체계 등에서 다르게 반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실험이나 연구의 전 단계에서 이 같은 성차를 고려해야 하지만 간과된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비록 문제 제기가 늦게 이뤄진 측면이 있지만 이제라도 많은 이들이 젠더 혁신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런 움직임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인 과학 수준을 높여 사회·경제적 기여를 증대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