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포스트 신지애' 서희경, 그린 정벌 준비완료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서희경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전망에도 그녀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하반기 첫 대회였던 2008년 하이원컵 SBS 채리티 여자오픈에서 첫 승을 거두며 눈길을 끌더니 3연승을 질주,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사로잡으며 ‘신데렐라’가 됐다. 이후 3승을 더 추가하며 하반기에 열린 12개 대회의 절반인 6승을 거뒀다. 마치 패션모델의 거침없고 당당한 워킹과도 같은 우승행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서울경제 골프매거진의 포토라인 앞에 섰다. KLPGA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 필드 위의 패션모델 하이원컵 대회 직후 KLPGA의 고형승 마케팅팀 대리는 서희경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장고를 거듭하다 그녀의 훤칠한 키와 몸매를 보고 ‘필드 위의 패션모델’이라 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리고 그녀를 말할 때면 어디서나 이 별명이 따라붙었다. ‘필드 위의 패션모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하나. 부담도 되지만 정말 기분 좋은 별명이다. 아무래도 주변 분들이나 갤러리가 나의 패션이나 미용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줘선 것 같다. 예전보다 신경을 조금 더 써야 하지만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한편으로는 그런 면들이 즐겁다. 패션 쪽은 내 분야가 아니라서 옷은 그날그날 기분에 맞춰 입는 편이다. 고형승 대리가 이 별명을 지어준지는 처음 알았다. 감사인사를 전해야겠다. 패션잡지는 많이 보나? 혹시 동료선수들과 패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는지. 사서 보지는 않지만 미용실에 가면 관심을 가지고 본다. 골프의류는 디자인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동료들과 어떤 게 예쁘다거나 별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보다 평소에 네일아트나 미용을 하며 수다를 많이 떤다. 심적으로 힘들었던 일이나 시합하면서 느꼈던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먹는 걸 좋아해서 어떤 가게의 무슨 요리가 맛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인터뷰 사진을 촬영해보니 재능이 꽤 있어 보인다. 기회가 된다면 패션쇼에서 전문 모델처럼 워킹해보고 싶은 생각은. 인터뷰 촬영은 정말 힘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모델들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어디가 예쁜지 어떤 포즈가 어울리는지 연구를 많이 하겠지만 나에게는 낯선 나라나 다름없었다. 패션쇼는 전문모델들과 너무 비교될 것 같아서 꺼려지지만 새로운 경험도 좋을 것 같다. 화보촬영도 재미있을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사진발’은 잘 받는 것 같나. 생긴 대로 받는 거 아니겠나?(웃음) 잘 받는다는 말인가. (웃음)꼭 그런 뜻은 아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필드 위의 패션모델이란. 골프선수들이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바로 필드에 서 있을 때다. 주어진 코스 안에서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모델을 뜻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프로정신 같은 것? 투어 4년차가 되기도 했지만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23살이 됐다. 뭐가 달라졌나?
시합을 다니느라 바빠서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인간적인 면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간적으로는 조금이나마 더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 신데렐라로 태어나다 서희경의 스승인 고덕호 프로는 그녀에 대해 “재작년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우승 문턱에서 자주 무릎을 꿇어 심적으로 힘들어 보였다. 한동안 연습도 하지 않고 연습장에 앉아 한숨만 내쉬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08년 8월29일 하이원컵 2라운드가 끝난 저녁, 고 프로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프로님, 샷이 불안해요.” 서희경이었다. 피곤한 상태여서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서울에서 강원도 정선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3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지켜본 서희경의 샷은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고 프로는 샷이 최상이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신데렐라가 탄생한 그날, 오전의 일이었다. ● 2008년은 정말 신데렐라 같은 해였다. 나 자신에게도 정말 놀라운 한 해였다. 그동안 왜 자신을 믿지 못하고 그렇게 소심했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첫 우승 후에 정말 잘 풀렸다. 행복했다. 주목을 받아서 기분도 좋았지만 그만큼 어깨도 무겁다고 느낀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프로 데뷔 후 2년이 넘는 동안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속앓이도 많았다던데. 분명 우승을 하려고 시합을 나가는 건데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 시합 후에 울었던 적도 많다. 프로에 데뷔하고 맞은 첫 대회 때 컷오프 당하고 나서 가장 많이 울었다. 울음을 그쳤다가도 바람이 불면 또 눈물이 났다. 사춘기 때처럼 울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이기려고 노력했어야 하는데 속상해서 자주 울었다. 다음 대회가 겁나고 무서워서였다. 코스 안과 밖에서 모두 친한 홍란이 먼저 2승을 거뒀을 때 샘이 나진 않던가? 홍란도 마음고생이 컸던 걸 알고 있었다. 먼저 첫 승을 거뒀을 때는 우승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우승했다는 말에 놀라서 18번홀로 갔는데 이미 시상식을 하고 있더라. 시상식 사이에 쉬고 있는 틈에 다가가서 서로 부둥켜안고 또 울었다. 첫 승을 하고 나니까 홍란이 또 우승을 하더라. 이후 정말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첫 승을 하면 골프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이원컵 최종라운드 17번홀에서 버디퍼트를 성공시켜 우승을 확정지었다. 후반 홀에서 하향 곡선을 타고 있었다. 몇 홀 남기고 무너지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도 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7번홀 퍼트를 성공시킨 후 ‘이제 됐다’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침착하려고 했지만 긴장하니까 나도 모르게 힘이 많이 들어갔다. 긴 시간이었다. 18번홀에서 두 번째 샷을 엎어서 쳤지만 생각보다 볼이 잘 떨어졌다. 하지만 두 번의 퍼트가 빗나가 세 번째 퍼트에 자신이 없었다. 아주 짧은 거리였는데도 정말 많이 떨렸다. 아무 생각이 안들 정도였다. 우승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이 정말 하얗게 됐다. 첫 우승 때 ‘한국표 세러모니’를 했다. 특별한 세러모니를 하고 싶었다던데. 우승을 하기 전까지 첫 승을 거두면 어떤 세러모니를 할지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그냥 자연스럽게 두 팔이 머리 위로 올라가더라.(웃음) 원래는 타이거 우즈처럼 감정을 보여주는 화끈한 세러모니를 하고 싶었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었다. 후반기 대활약의 이유는. 친한 언니나 동생들이 우승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 부족한 한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뭔지 몰랐다. 어느 순간엔가 부럽고 속상했던 마음들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을 비웠다. 그런 결심을 한 뒤부터 이전에는 겁이 나서 하지 못했던 샷들을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퍼트가 상당히 좋아졌다. 예전에는 끝까지 스트로크하지 못해서 볼이 홀에 못 미처 서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을 비우고 나서 퍼트가 상당히 과감해졌다. 확률이 높아진 것 같다. 운이 좋아서 잘 들어가는 경우도 생겼는데 그 때문에 더 좋아지는 효과도 생겼다. (그녀의 상반기 홀당 평균 퍼트수는 1.71타로 20위,하반기는 1.68타로 2위다.) 지난 시즌 6승 중 3승이 역전승이다. 뒷심이 상당히 강한데. 역전승이 많았던 건 운이 좋아서인 것 같다. 예전에는 우승을 못할 거라고 미리 예상했던 터라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대회였던 ADT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는 5타 차로 뒤지고 있다가 2위와 3타차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런 괴력은 어디서 나오나. 그날 기록한 64타가 나의 베스트 스코어다. 그 자체가 너무 기분이 좋았다. 특히 지난해 목표가 베스트스코어를 깨는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 목표를 시즌 마지막 날 달성했다. 우승으로까지 이어져서 마지막까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경기 초반 3~4홀을 돌다보면 ‘아, 오늘은 잘 되겠구나’란 느낌이 온다. 그러나 느낌이 너무 좋은 날 꼭 스코어가 좋지 않았다. ADT 챔피언십이 열린 제주 스카이힐의 첫 홀(파5, 518야드로 이날 1번홀의 평균 타수는 6.97타)이 상당히 어려웠다. 그래서 더 조심했다. 파를 하고 나서 ‘아,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3위 안에는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난 시즌 체력훈련을 중점적으로 했다. 체력이 투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또 톱랭커 중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급성장할 선수가 있는가. KLPGA 투어의 대회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체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정도다. 작년까지 투어에서 같이 뛰어본 선수들을 보면 다들 실력이 뛰어난 것 같다. 동료들이 컨디션만 잘 조절한다면 올 시즌은 갤러리가 보기에 더욱 재미있는 한해가 될 것 같다. 오프시즌 동안 너무 바빠서 제대로 체력훈련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많이 먹고 있다. 작년에는 쉬는 기간에만 체력훈련을 하고 시즌 중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올해는 오프시즌 뿐만 아니라 시즌 중에도 체력훈련을 계속할 것이다. 부상도 방지하려면 체력을 튼튼히 하는 게 좋다. 그럼 패션모델의 몸매가 사라지지 않나. 하체는 분명 좋아질 것이다.(웃음) ● ‘포스트 신지애’의 활약 여부 많은 이들이 신지애가 떠난 자리를 서희경이 채워줄 거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그녀는 요즘 ‘포스트 신지애’, ‘KLPGA의 차세대 주자’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2009 시즌을 맞이하는 소감과 목표는. 기대반 걱정반이다.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소문을 듣기로는 다들 훈련에 열심이란다. 누가누가 치고 올라올지 궁금하고 기대도 많이 된다. 긴장 속에서 경기했으면 좋겠다. 승부욕이 있는 것 같은 대답이다. 당연히 강하다. 프로 선수인데 왜 없겠나?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있는 게 승부욕이다. 스스로 스타성을 키우는 선수들은 많지 않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에게 스타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나? 앞으로 많이 키워야 할 부분이다.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나만의 개성도 키워야 할 것 같고 초반에 말한 액션도 고민해야겠다. 또 경기할 때의 매너나 태도적인 부분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자기 관리다. 나도 스타성을 갖춘 선수가 되겠다는 욕심이 많다. 그렇다면 인터뷰 실력을 키우기 위해 앞선 질문 중 다시 답변하고 싶은 내용은 없나? 순발력이 없어서 죄송합니다.(웃음) 스타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또 한 가지가 라이벌이다. 자신의 최고 라이벌은. 지난해는 라이벌이라기보다 2인자의 느낌이 컸는데 올해는 KLPGA 투어 1인자의 위치에 꼭 올라서고 싶다. 라이벌은 한 명을 집어서 말하기 힘들다. 다만 라이벌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는 것 같다. 해외진출은 어떤가? 지난해 2~3승 정도를 할 때까지는 일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내 대회의 규모도 커졌고 대회수도 늘어났기 때문에 아직은 해외 투어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2~3년간은 국내에 기반을 둘 생각이다. 해외 투어 대회도 몇 개씩 뛸 것 같다. 물론 신지애처럼 좋은 기회가 오면 큰 무대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난해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은 본인의 두 번째 LPGA 대회였다. 주니어 시절부터 이어오던 최종라운드 징크스를 국외대회에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 LPGA 대회가 떨리기는 많이 떨렸다. 경쟁자들도 늘 대하던 선수들이 아닌 새로운 얼굴들이었다. 그것도 과정이고 넘어서야 할 부분이다.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한다. 당시 최종라운드 9번홀의 어프로치샷이 그린과 해저드 사이의 러프에 빠져 3퍼트를 했다. 그 샷 때문에 사실상 우승권에서 멀어졌다는데. 피칭은 길 것 같아 52도 웨지를 짧게 잡았다. 우측을 봤는데 생각보다 짧았다. 그래서 샷을 한 순간 ‘아, 빠졌다!’라고 생각했다. 더블보기까지 해서 아쉽지만 후회해봐야 이미 지나간 일이고 엎질러진 물이다.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은.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우선 코스를 공략하는 시야를 더 넓혀야겠다. 화려한 플레이보다 선택의 폭을 더 넓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체력도 더 보강할 것이다. 더 큰 무대에서의 배짱도 키워야 되겠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2008년 많은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경기 한파로 힘든 분들도 많은데 올해는 그런 걱정을 날려버리는 후련한 플레이를 보여드리겠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도 지금처럼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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