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명의(名醫) 허준이 선조에게 자신은 침을 잘 모르니 '허임'에게 물어야 한다고 언급하는 일화가 있다.
허준과 동시대를 살았고 광해군의 어의(御醫)로 나란히 의관록에 이름을 올린 허임을 주인공으로 3권짜리 소설이 출간됐다. 관노와 여종 사이에서 태어난 천민의 신분을 딛고 침술 하나로 왕의 주치의에 당상관까지 오른 허임의 일대기가 장편소설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주인공 허임은 어머니의 치료비 대신 의원의 잡일을 거들면서 의술에 눈을 뜨게 됐다. 어깨너머로 터득한 그만의 침술은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놓는 '신의 한 수' 였다. 자신처럼 가난한 민초들을 돌보며 경험을 쌓아 혜민서에 들어가 활약하게 되는데, 임진왜란 중에는 광해군의 분조(임시 조정)를 따라 전국을 누볐다. 광해군의 병도 여러 번 치료해 신임을 얻었다. 이 인연으로 허임은 고속 승진했고 정3품의 양주목사에까지 올랐으나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사헌부에서 반대해 결국 철회됐다.
허임의 일생은 17세기 후반 조선의 복잡한 역사와 절묘하게 뒤엉킨다. 당파싸움에만 몰두한 권력자들,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왕, 공을 세운 사람이 역적으로 몰리는 등의 사건은 모두 사료를 토대로 기술됐다. 특히 선조와 광해군의 미묘한 신경전과 선조의 의문사, 허준과 허임의 경쟁이 흥미진진하다.
'낮은 한의학'의 저자 이상곤 원장과 100편 이상의 소설을 쓴 성인규 작가의 공저작으로 기획에만 4년이 걸렸다. 각 1만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