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예산안 처리 급하다

정 세 균 (국회 예결위원장)

예산안 심의가 또다시 지연되고 있다. 예산안 심의는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것으로 정기국회에서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부분이다. 아무리 정치적 입지가 다르더라도 예산안 심의만큼은 여야를 떠나 국민을 우선 생각하고 국민의 입장이 돼 충실히 심의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기본 책무이다. 헌법에 규정된 법정시한 내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했으나 진통 끝에 여야는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하기로 어렵사리 합의한 바 있다. 예결위원들은 정기국회 회기 내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 자정을 넘겨가며 최선을 다해 심의에 임했으나 심의기간 부족과 여야간 입장차이로 결국 마무리 짓지 못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국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물론 지금까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국회가 법정처리 시한 내 처리한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다. 그만큼 예산안 심의와 처리와 관련해서는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과거에는 예결위가 예산안 심의와는 무관한 치적 공방을 벌이는 정쟁의 장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국민의 기대와 요구를 안고 출범한 17대 국회는 구태의연한 정치행태에서 벗어나 법에 규정한 대로 충실한 예산 심의는 물론 과거와 같은 예산안의 늑장 처리라는 잘못된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 비록 예산안 심의를 다소 늦게 착수했지만 여야가 진지하게 심의한 결과 종합정책 질의와 부별 심사를 종결하고 계수조정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우선 감액분을 조정하는 등 여러 차례 자정을 넘겨가면서 최선을 다해 심의해왔다. 여야간 이견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되던 예산안 심의는 뚜렷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한나라당의 느닷없는 예산안 심의 불참통보로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민생경제를 생각해 여야는 조속히 예산안 심의에 임하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현재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택시운전기사는 사납금을 제대로 채우기도 버겁고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 일감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헤매고 있다. 국민들의 원성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적극 나서서 해결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장애가 돼서는 안된다.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제때 확정해줌으로써 재정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특히 대졸자들이 쏟아지는 연초에 맞춰 적기에 일자리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와 정부투자기관 등은 중앙정부의 예산이 확정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지방자치법상 광역지방자치단체는 오는 12월17일까지, 기초지방자치단체는 12월22일까지 내년도 예산을 확정해야 하므로 늦어도 12월15일전에는 국회에서 예산안을 확정해야 한다. 민생경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국회는 더 이상 이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정치적 쟁점에 대해 여야간 의견은 다를 수 있고 토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일에는 선후가 있고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정치쟁점과 구분해 시급한 민생경제부터 챙겨서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민생과 직결되는 예산안 처리를 정치적 쟁점에 볼모로 잡아둬서는 안된다.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치권 내부의 신뢰문제이다. 여야 간사는 내년도 예산안을 정기국회가 끝나는 회기인 지난 12월9일까지 국회본회의에서 통과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러한 합의 사항을 국회의원 스스로 뒤집으면 신뢰의 정치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제17대 국회는 국민들의 요구는 뒤로 한 채 정쟁에만 몰두하던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에서 탄생했다. 그만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도 컸고 참신한 신인들의 진출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회는 민생은 뒷전이고 예산안 심의를 정쟁의 볼모로 잡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뚜렷한 이유없이 예산안 심의를 거부하거나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것은 국회의원의 직무유기다. 예산안 심의를 하루속히 정상화함으로써 국회가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국민들께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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