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환경 농업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본격적인 농산물 개방시대를 맞아 친환경 유기농업이 우리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근본 대안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적 안목에서 친환경 농업의 발전을 위해 기존 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주도 친환경 농업 전환기 맞아
국내 친환경 농업은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정책을 바탕으로 지난 10여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사실상 불모지에 가까웠던 상태에서 벗어나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몰라보게 늘었다. 식량 증산에 매달려 농약과 비료의 무분별한 사용을 당연시하던 그간의 관행에 일정 부분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도 고무적이다.
정부는 친환경 농업 육성을 위해 단계별 성장전략을 채택했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 정도에 따라 유기·무농약·저농약 재배의 세 단계로 나누고 지원에 나섰다. 농약과 비료를 모두 사용하는 관행농이 저농약으로, 저농약 농가는 무농약으로, 무농약 농가는 유기재배 농가로 전환하도록 정책적 지원을 펼쳐왔다. 초창기 이러한 전략은 상당 부분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도입단계를 지난 지금 이러한 시스템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기재배를 중심으로 생산과 소비의 전 단계에 걸쳐 각 주체들이 긴밀하게 연계하며 협력하는 선진국 모델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작물의 생산과정에서부터 인증,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유기농업이라는 대전제 위에 촘촘하게 얽혀 있다. 그 바탕에는 유기농의 철학이 깔려 있으며 정부의 정책은 시스템이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우리 역시 이런 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민간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직접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들을 중심으로 인증기관과 유통업체가 협력하고 상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희망이 있다. 정부는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막힌 곳을 뚫는 데 행정력을 모아야 한다. 인증절차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정부 정책이 규제 중심으로 편중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또 친환경 농업 발전의 걸림돌로 꼽히는 것은 생산력이다. 비료와 농약을 배제하면 생산량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항간의 오해와 달리 유기농으로 작물의 생산량을 유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확신한다. 대표적으로 쌀은 햇볕과 물만 있으면 생산량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생산량을 조금 더 늘리기 위해 관행적으로 제초제와 비료를 넣는 것에 불과하다.
유기농을 할 때도 논에 볏짚도 넣고 퇴비도 넣는다. 생산 증대의 핵심은 적합한 종자와 그에 맞는 땅심(지력)이다. 땅심이 뒷받침되고 흙과 종자의 궁합만 맞으면 생산량은 더 올릴 수 있다. 반대로 관행 농업은 장기적으로 지력이 떨어져 생산량 유지에 한계가 올 수 있다.
민간 상생시스템 구축·규제 철폐 힘써야
어린 시절 집 근처 논에는 벼만 자라는 게 아니라 미꾸라지와 붕어·새우·우렁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명이 사라지고 벼만 가득한 논은 '쌀 공장'으로 전락했다. 이와 함께 생명을 살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농업의 근본가치도 잃어가고 있다.
태동기를 지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친환경 유기농업의 대의와 가치를 되돌아볼 때다. 우리 밥상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고 값싼 수입 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서 자란 먹거리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친환경 유기농업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한반도 전체의 유기농업화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