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동십자각/11월 25일] 승자의 저주

김성수 금융부 차장 최근 굵직굵직한 기업 인수합병(M&A)이 이뤄지면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경제학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 용어는 지난 1971년 미국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의 기술자들이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됐다. 당시 석유회사들이 석유 시추권 경매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낙찰받은 사례를 소개한 것이다.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과도한 투자로 손해를 보거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승자의 저주는 간단한 실험에서도 잘 드러난다. 옥스퍼드대 폴 클렘퍼러 교수는 수업시간에 동전을 가득 채운 유리병을 보여주면서 경매를 실시한다고 한다. 최고 금액으로 낙찰받은 학생에게 동전을 모두 준다는 게 경매의 룰. 결과는 매번 동전의 합계보다 많은 금액을 써낸 학생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실시하는 20달러 경매도 승자의 저주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요즘엔 M&A을 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써낸 기업이 자금난 등 후유증을 겪을 때 자주 인용된다.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나,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다가 3,150억원이라는 막대한 계약금을 날리고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한화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그룹이 승자의 저주라는 덫에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인수자금과 관련한 논란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외환은행이라는 대어를 낚은 하나금융지주는 현재 승자의 저주에게 한발 비켜 선 모습이지만 마냥 자유로울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선 다양한 정보와 정확한 가치평가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에 대한 실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인수자금(4조7,000억원) 조달방안을 둘러싼 뒷말이 많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현대그룹이나 하나금융은 승리의 관을 손에 쥐고 있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는 투명성을 보여줘야 한다. 비록 실사과정에서 놓친 게 있고, 자금조달이 계획과 어긋나더라도 투명한 일처리로 시장의 용인을 얻는다면 승자의 저주를 비켜갈 수도 있다. 저주를 내리는 주체는 시장과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