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5대자동차 생산국이고 운전면허증 보유자 숫자는 2,590여만명에 달한다. 자동차 총 보유대수는 1,740만대로 인구 3명당 1대 꼴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출발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국내에 자동차가 들어온 것은 1902년. 고종의 재위 40주년 기념식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에서 자동차 1대를 도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개화의 상징으로 부상하기도 했지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전철이 번갯불을 튀겨 가뭄이 들고 그로인해 벼락을 맞아죽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국내 자동차산업은 이 같은 시행착오와 시련기인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친 뒤 싹을 틔울 수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불 타 버린 공장 터에 천막을 쳐서 만든 재생 자동차공장에서는 며칠만에 부서진 미군 폐차 부속품과 거리에 굴러다니는 드럼통, 산소용접기, 망치 등으로 자동차가 만들어졌다. 구체적인 장비 없이 망치 하나로 두들겨 만든 수공품 재생 자동차였다. 첫 국산자동차 ‘시발자동차’도 이런 시대 상황에서 고물자동차를 짜집기해서 나왔다.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인 저자는 1899년 음력 4월 초파일 서울에 첫 모습을 드러낸 전차부터 현대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까지 지나온 한국 자동차문화의 110년의 역사를 정리했다. 야사(野史)부터 자동차 문화의 변천사, 자동차 신화를 일궈낸 주역들의 뒷얘기도 전한다. “내 나이 20대부터 자동차 기름을 묻히며 수리업을 했기 때문에 자동차에는 누구보다 깊은 애착을 가져왔어. 자동차 수리공장과 건설중기 공장을 경영하면서 배운 자동차의 기계원리에 대해서는 나를 따를 자가 없다고 자부해. 물론 생산기술에 대한 경험은 없지만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들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 아니야. 그래서 우리가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큰 문제될 것이 없어. 처음부터 풍부한 기술을 가지고 한 나라가 어디 있어. 배워서 열심히 하면 되는 게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뒤 회고한 말이다. 자료 사진과 신문 기사 등 관련 자료들을 수록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중간 중간 대화체의 에피소드들을 더해 흥미를 가지고 자동차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