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삼성 비자금수사 '개점휴업'

특검도입으로 사실상 추진력 잃어<br>"자료 챙겨주는 역할 전락" 우려도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가 이틀째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28일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가 있는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박서강기자

검찰의 삼성 비자금 수사가 사실상 ‘올스톱’ 위기에 빠졌다.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ㆍ감찰본부(본부장 박한철 검사장)는 28일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법안을 수용해 특검 도입이 확정된 것과 관련, “특검의 원활한 수사 진행을 위해 필요한 범위에 국한해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박 본부장이 수사팀 구성 후 “특검에서 검찰 수사 이상 나올 게 없도록 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던 발언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의 출금조치와 전격 삼성 차명계좌 추적, 그리고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 소환조사 등 전광석화 같았던 검찰 수사가 상당히 더뎌질 전망이다. ◇“필요한 수사만 하겠다” 한발 물러서=검찰 수사가 추진력을 잃을 것이라는 예상은 특검 논의 초반부터 제기돼왔다. 여기에 노 대통령이 특검법안을 수용하고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 등) 이중 삼중의 수사가 되지 않도록 배려해달라”고 밝히면서 검찰 수사는 사실상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은 김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비자금 조성과 사용 ▦정ㆍ관계 로비 등 고발 내용과 ▦이건희 회장 일가의 차명자산 보유 ▦비자금 사용처 ▦계열사 분식회계 의혹 등에 대해 전방위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박한철 본부장도 “김 변호사와 언론 등에서 제기하는 모든 것이 수사대상”이라고 밝혀왔다. 검찰은 이를 대비해 검사 15명을 포함한 총 55명의 매머드급 수사팀을 꾸리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중 삼중 수사’ 발언으로 검찰의 이 같은 노력도 무위로 끝날 처지에 놓였다. 김 변호사의 출석길에 동행한 김영희 변호사는 “노 대통령이 ‘특검이 통과됐는데 검찰이 수사하면 이중 삼중으로 수사하게 되는 셈’이라고 얘기했는데 이는 검찰 수사를 중단하라는 지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검 자료 챙겨주는 역할로 전락(?)=김수남 특수본부 차장검사는 “검찰 수사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특검법이 제안됐다는 입법취지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며 “필요한 범위에 국한해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특수본부는 ‘필요불가결한 수사, 긴급성이 인정되는 수사, 누가 와도 해야 하는 수사’ 등으로 축소해 수사를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차장검사는 “경우에 따라서는 오해를 살 수 있는 수사, 피의자에게 내성을 길러줄 수 있는 수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경우 검찰 수사는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관련 수사에만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서는 검찰 수사가 특검 수사를 단순 지원하는 자료 취합ㆍ제출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 차장은 “수사팀으로서는 의욕을 갖고 시작했는데 특검 통과로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라며 특본의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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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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