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새책] `이이화의 고려사'

『여성들도 말을 타고 개경 시내를 활보하고 돌아다녔다』『아들과 딸은 재산상속에서 차별되지 않았다』 『왕비도 재혼할 수 있었다』 먼나라가 아닌 바로 고려(918~1392) 때 이야기다. 성리학을 국시로 했던 조선 500년의 전통이 워낙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탓인지, 이런 얘기들은 우리하고는 전혀 이질적인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학자 이이화씨의 「한국사 이야기」 제2부 「고려편」(전4권)을 통해 한국 중세사를 탐험해가면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활기찬 생활문화를 영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문장력과 이야기 솜씨로 무리없이 고려사 500년을 흥미진진하게 읽어낼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 역사에서 진정한 통일을 이룩한 것은 고려왕조이다. 고려는 외세의 개입 없이 후삼국을 통일했으며, 통일신라 말기 크게 흥했던 지방 호족들을 효과적으로 중앙에 통합시켜나갔다. 경제적으로도 고려는 개발된 지역과 개발되지 않은 지역의 불륜형을 해소하는 노력을 거듭해 사회적 생산력과 통합력을 높히는데 주력했다. 고려야말로 명실상부한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정부였다는 얘기다. 조선왕조는 성리학이라는 단일한 지배원리가 점철된 사회였다. 여필종부라는 남성 우위의 사회윤리와 장자 우위의 제사원리, 그리고 남성과 장자가 상속의 우선권을 행사하는 수직적인 사회구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사회는 남녀가 균등하게 재산을 상속받고 서로 번갈아가며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사회였다. 물론 남녀가 완벽하게 균등한 권리를 행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요즘 기준으로 따져보아도 남녀평등이 상당히 진척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남편이 아내를 버리거나 아내가 간통을 하면 처벌을 한 점, 부모의 양해가 없거나 이유없이 아내를 버리면 관직에서 쫓겨나고 유배를 보낸 점, 남편이 아내를 무단히 버리면 일정 지역 안에 살게 하는 거주 제한의 처벌을 한 점, 그리고 왕비들도 이혼을 할 수 있으며 재혼으로 왕비가 될 수 있었던 점은 고려사회가 상당히 유연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조 숙종은 『사농공상에 종사하는 백성이 각기 그 생업을 잘 닦으면 나라의 근본이 된다』면서 상업을 적극 장려했다. 유교적인 논리에 입각해 본다면 농사를 근본으로 여기고 상업을 말리로 여겨 천시하는 직업관을 가르쳤지만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선비와 농부, 그리고 공장이나 장사꾼을 차별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고려시대에는 많았는데, 사찰에서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는 식품인 마늘과 파를 재배해 민간인에게 판매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금강산의 장안사같은 절에서는 개경에 점포를 내어 직접 생산한 물건을 팔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들여 중간 마진 없이 이득을 내기도 했다. 고려시대는 또 다양한 생활문화의 보고였다. 고려때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말이었다. 특히 부인들과 궁녀들도 말을 타고 나들이를 하거나 개경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이화씨는 지난해 6월 한국사 이야기 제1부 4권을 펴낸데 이어 이번에 고려사편을 완성했는데, 「함국사 이야기」를 전 24권으로 완간할 예정이다. 【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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