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12월 20일] '영혼 있는 공무원'으로 몰아가기
경제부 이종배기자 ljb@sed.co.kr
한동안 잠잠했던 공무원 물갈이가 다시 관가를 휩쓸고 있다. 1급 고위 공무원에 대한 일괄 사표가 교육과학기술부ㆍ국세청에 이어 농림수산식품부로 이어졌고 그 뒤로 제4ㆍ5의 부처도 곧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갈이 찬성 여론의 골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 과거 정부 때 정책에 적극 옹호했던 관료들이 남아 있는 한 MB식 정책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위 관료도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사실 MB 정부의 과거 인사 솎아 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때 직위 여하를 막론하고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관료를 옛 정부 인사로 낙인 찍어 일정 기간 동안 관리해오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관료들 사이에서는 '노무현 정부 부역꾼'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을 정도다.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면 그것을 집행하는 관료들도 물갈이가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느 나라를 봐도 정권 교체 후에는 새로운 정책을 구현할 인물이 등장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물갈이 폭이다. 장관과 차관 등 최고위급이 정권 교체 과정에서 물러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에서 이는 당연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그 밑에서 일한 공무원도 물갈이 대상에 포함돼 있다.
MB 정부 들어 유행한 말 중 하나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것. 공무원을 비하하는 듯한 이 말에는 관료는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의 철학을 충실히 받들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담겨 있다. 만약 관료들이 자신의 소신에 어긋날 경우 대통령의 지시를 수시로 거부하는 '영혼 있는 공무원'이 되면 어떻게 될까. 국가 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 정권의 국정 방향에 맞춰 정책을 만든 실무자들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MB 어젠다의 실행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무원들이 차기 정권에서 다칠 것을 우려해 오히려 복지부동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공무원이 MB를 위해 충성을 다할 수 있을까. 앞으로 몇 년 후 대통령 선거가 있다. 이를 통해 정권이 바뀔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MB 정부에 충성한 공무원은 현재처럼 대가를 톡톡히 치르지 않을까. 공무원들은 벌써부터 두려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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