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단계 경제피해 확산가정파탄.자살등 부작용 속출…규제.감독없어 피해 급증
서민경제가 또 하나의 위기에 봉착했다. 대출급증, 신용카드 범람으로 휘청거리는 마당에 이번에는 다단계판매가 가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세가지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고 있다는 점. 늘어나는 대출을 감당하지 못해 신용카드대출에 의존하고 정상적인 소비보다는 다단계판매에 빠지는 구도다.
▶ 가계대출, 신용카드, 다단계판매 악순환
특히 가계대출이나 신용카드는 가계가 공급자라기보다 제도의 희생자인 데 반해 다단계판매는 가계 구성원들이 공급자(판매조직)이면서 피해자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벌써부터 이혼과 가정파탄ㆍ자살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제어하고 정상화하기 위한 어떤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못한 상태다. 시장 감독과 계도기능도 전무하다. 정부가 의지가 있는지, 문제를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감독과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다단계판매가 첨단화ㆍ지능화해가면서 사회적인 부작용을 일으키고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는 뒤늦게 나서고 있다. 그러나 지난주 검찰 주재로 공정거래위원회ㆍYMCA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긴급모임을 가졌지만 이렇다 할 대책도 없이 현황파악에 만족하는 수준에 그쳤다.
▶ 다단계시장 급팽창
다단계시장은 새로운 유통방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지난 98년 4,450억원에서 매년 2배 가까이 성장하며 2001년 3조5,513억원으로 커졌다.
올들어 4월까지 이미 1조8,374억원을 기록해 이 같은 속도라면 전년보다 또다시 2배 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다단계시장의 급성장을 틈타 온갖 불법 피라미드업체들이 늘어나며 피해자가 늘고 있지만 이를 개선할 정부의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데 있다.
▶ 다단계업체 현황 및 피해사례
95년 60개에 불과하던 다단계업체는 98년 197개, 2000년 265개로 늘어나 4월 현재 443개가 영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암웨이 등 상위 20여개 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최저자본금 3억원 수준의 영세업체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절반 가량인 222개 업체는 폐업한 상태다.
다단계 피해자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희경 YMCA 간사는 "영세업체들은 반품청구가 늘어나고 피해사례가 많아진다 싶으면 문을 닫고 다른 이름으로 등록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며 "똑같은 기업주가 대표이사와 상호만 바꿔 조직을 확장해도 현행 법률상 단속이 불가능한 게 문제다"고 말했다.
▶ 오는 7월 방문판매법 시행 앞두고 부처간 정책혼선
다단계 규정을 관할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 등 관련 부처간에 다단계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정책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공정위는 7월 방문판매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가입시 의무구매 조항 신설, 후원수당 확대(35%→40%), 상품가격 한도확대(100만원→150만원) 등을 내놓았지만 법무부와 검찰은 규제완화가 불법업체를 양산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성구 공정위 전자거래보호과장은 "가입비 금지 등 다단계시장의 비현실적인 규제를 완화해 건전한 업체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되 시장 감독기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악덕업체는 현행 법률로도 사기죄를 적용해 얼마든 구속이 가능한 만큼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시장이 더욱 혼탁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이병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