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6월 9일] 이상과 현실의 균형이 필요한 때

연암 박지원은 허생전에서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를 비판했다. 허생은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투와 도포의 넓은 소매 자락도 자르지 못하면서 입으로는 북벌을 주장한 당시 집권층의 이상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지적한다. 또 허생은 매점매석으로 돈을 벌어 이재능력을 보였지만 이것이 '나라를 병들게 한다'는 문제의식도 지녔다. 박지원은 허생의 입을 통해 아무리 큰 이상이라도 반드시 현실을 딛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동시에 현실 적응 역시 창대한 이상을 지향하는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연암의 문제의식 속에는 천박한 실용주의가 설 자리는 없다. 그에게 이상주의가 배제된 실용주의는 나라를 병들게 할 뿐이다. 물론 '그까짓 상투 하나' 아끼면서 말로만 하는 이상주의 역시 헛된 사대부의 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겸손함이 우리를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하고 비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긍심이 필요하듯 이상주의는 실용을 천박하지 않게 하고 실용주의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18세기 조선시대 연암의 문제의식은 21세기의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성장담론과 보편적 복지 문제, 세계 10위의 무역 규모를 자랑하면서도 항상 대결과 갈등이 잠복해 있는 남북 대치 상황, 글로벌 경제체제와 국민경제의 갈등 등 우리 현실은 '이상과 실용의 역동적 균형'을 요구한다. 최근 천안함 사태로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가 새삼 중요하게 부각됐다. 더 큰 문제는 10년 전 6ㆍ15 선언 이후 추상적 가능성으로만 남아있던 '코리아 리스크'가 일순 현실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수십조원이 주식시장에서 증발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0년의 6ㆍ15 남북정상 공동선언은 현실정치에서 항상 이상주의와 실용주의의 접목을 주장하고 이를 평생 실천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지의 결과물이다. 서로 적대적이었다고 해도 경제적 관계가 생기다 보면 평화를 깨는 것이 피차 손해가 되므로 교류협력이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라고 그는 1970년대 이래 30년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망원경으로 멀리 내다보면서 동시에 현미경으로 가까운 것을 들여다보라고,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동시에 갖추라고 늘 강조했던 김 전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새삼 생각나는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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