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믿는 도끼 드릴십에 발등 찍힌 조선업계

"고수익 낸다" 무작정 발주하다 저유가에 선주들 인도 포기·연기

삼성重·대우조선 등 경영 차질

적자에 허덕이는 조선사, 또다른 부실 도화선되나



석유나 가스 등을 시추·생산하는 해양플랜트는 건조과정 중 잦은 설계변경과 공정지연으로 국내 조선업계에 수조원대의 적자를 안겼다. 그러나 해양플랜트 중에서도 '드릴십(심해용 이동식 시추선)'만큼은 고수익을 내는 효자상품으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 드릴십을 발주한 선주들이 줄줄이 인도를 연기하거나 포기하며 국내 조선업계에 또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인도를 미룬 기간만큼 한 척당 수천억원의 자금 공백이 생기며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상황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1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지난 11일 인도를 불과 석 달 남긴 드릴십 1척의 인도시기를 선주의 요청에 따라 예정보다 1년 반 늦춘 오는 2017년 6월로 연기했다.

오세아니아 지역의 이 선주사는 인도를 늦춘 대신 1,000억원가량 더 얹은 7,093억원을 뱃값으로 내기로 했다.

이번 드릴십까지 삼성중공업은 올 들어서만도 벌써 6척의 인도를 연기했다. 현재 건조 중인 드릴십(7척)의 86%에 해당한다. 드릴십 대부분은 인도 시점에 뱃값의 60~90%를 내는 헤비테일 방식이다.

인도를 늦추고 이에 따른 금융·관리 비용을 모두 선주사가 부담한다고 해도 이미 선박 건조까지 인건비나 재료비를 모두 지출한 조선사로서는 당장 척당 3,000억~5,000억원에 이르는 자금 공백이 생기며 경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선주사가 드릴십 인도를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우조선은 지난달 19일 미주지역 선주가 주문한 7,034억원 규모의 드릴십 계약을 해지했다. 선주사가 선박 인수대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드릴십은 올해 말 인도 예정으로 상당 부분 건조가 완료됐다. 대우조선은 이미 받은 선수금을 훨씬 뛰어넘는 자금을 이 배에 쏟아부은 상황으로 새 주인을 찾지 못하거나 애초 계약금액보다 싸게 배를 처분하면 그만큼 이 회사의 손실이 될 수 있다.


드릴십이 조선사들의 위협요인으로 떠오르면서 업계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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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십은 해양플랜트로 분류되지만 수익성 면에서는 다른 설비들과 차원이 다르다.

수주 당시 '세계 최초' '최대 규모'로 포장된 반잠수식 시추설비나 부유식 생산·하역·저장(FPSO) 설비 등은 국내 조선사의 경험 부족으로 대규모 손실을 봤다.

반면 드릴십은 국내 조선업계가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건조 능력을 갖춰 부가가치가 높다. 업계를 이끌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지금까지 세계에 발주된 드릴십 151척 가운데 64척을 맡아 짭짤한 이윤을 챙겨왔다.

이처럼 드릴십은 확실한 수익을 보장했지만 해외 선주들의 잇단 인도 연기·취소라는 불가항력의 상황을 맞았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시추작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면서 드릴십 수요가 급감한 것이 최근 사태의 직접적 원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드릴십 수요가 많던 2011~2013년 중 드릴십 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선주사들이 실제 사용처를 확보하지 않은 채 무작정 발주하는 바람에 최근 인도 연기·취소를 일으킨 데 있다.

실제 올해 삼성중공업에 인도 연기를 요청한 6척과 대우조선이 해지한 1척 모두 선주들이 빌려 갈 곳도 정하지 않은 배들이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드릴십 대여 전문선주들은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 인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조선소들이 건조하는 드릴십 중 상당수의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아 앞으로 추가 인도 연기나 취소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현재 삼성중공업 7척, 대우조선해양이 11척의 드릴십을 건조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삼성의 경우 대부분, 대우조선은 절반가량 활용계획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당분간 드릴십 수요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국내 조선업계의 비상상황은 이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5월 현재 세계 드릴십 116척 가운데 100척이 운용돼 가동률은 86%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가동률(96%)보다 10%포인트나 떨어졌다. 여기에다 현재 건조 중인 드릴십이 52척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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