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李根개혁기 중국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은 『중국이 또 하나의 동아시아 기적을 이룰 것인가』하는 물음을 제기했다. 그러나 최근의 아시아 경제위기는 『중국이 동아시아 발전 모델을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이웃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이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물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재벌의 연이은 도산이후 중국에서는 기업집단 육성정책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소위 동아시아 모델은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 높은 내부자 지분율과 외부자의 미약한 역할, 밀접한 은행-기업 관계와 기업금융의 낮은 주식시장 의존도, 경직적 노동시장, 외자기업의 비중이 낮은 독점적 내수시장 구조, 정부 주도의 선택적 산업정책 등의 특징을 갖는다. 이에 관해 필자는 중국이 이같은 동아시아 모델을 건너뛰어 미국식의 시장지향적 경제에 근사한 경제체제로 발전해 나갈 조짐이 보인다고 본다. 다섯 가지 면에서 이를 살펴 보자.
첫째, 상장기업 지배구조의 측면에서 볼 때 외부자의 지분과 발언권이 강화되고있는 가운데 내부자의 지분율이 낮으며, 상장주식 시가총액 대 GNP(국민총생산)의 비율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등 주식시장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거래액의 절대규모로 볼 때 중국의 주식시장은 이미 한국·말레이지아·홍콩보다 크다. 1998년 중국의 주식시가총액 대 GNP 비율은 1985년의 한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비율보다 높다. 개인투자가의 비중이 이미 일본·독일·캐나다보다 높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지분율도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보다 높다.
둘째, 은행-기업관계에서 볼 때, 중국의 은행들은 기업주식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제되고 있어 영미식의 「은행-기업 분리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4대 상업은행은 정부 소유이며 계획경제의 유산으로 인해 은행이 대출기업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 혹은 감시를 실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경우와 비슷하다. 중국도 주거래은행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일본식의 주거래은행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주식시장이 기업에 대해 더 큰 감독기능을 수행하는 시장중심적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 가령, 중국기업들의 자본조달 방법에 있어서의 변화가 목격된다. 전통적인 국유 대기업과 달리 중국의 상장기업들은 신규투자 재원의 조달을 주로 주식시장 혹은 사내유보 이윤에 의존하고 있다. 상장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신규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투자에 적합한 기업으로 평가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주식시장이 기업감독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노동자의 이직률이 상승하고 해고가 용이해 지는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기업이 요람으로부터 무덤까지의 종신고용 뿐 아니라 주택·교육·의료·복지·연금 등 모든 것을 제공하는 「산업봉건주의」를 타파하고자 했다. 최근 노동계약제의 급속한 확산으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이제 대개 3~5년이라는 계약에 의해 고용된다. 과거에는 이직의 주된 원인이 정년퇴직이나 전출이었으나 최근에는 해고와 계약만료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국유기업 노동자의 이직원인 가운데 계약만료는 약 10%를 차지해 노동계약이 자동적으로 갱신되지는 않음이 잘나타난다.
넷째, 높은 외자기업의 비중과 전국적 범위에서의 시장통합으로 인해 내수시장경쟁이 대단히 치열하다. 시장경쟁이 격화된 원인은 첫째, 시장지향적 개혁이 공급부족이 만연하였던 과거의 계획경제를 공급초과상태의 시장경제로 전환시킨 것이고, 둘째, 국내경제의 통합으로 인해 악명높던 지방보호주의가 타파되었으며, 셋째, 다수의 향진기업, 사영기업 그리고 외자기업의 시장진입이다. 1980년대 중반이후 초과공급 문제는 심각해서 섬유산업의 경우 과잉설비규모는 시장수요의 40% 가량이고, 전자산업에서는 공급초과 품목수의 비율이 60%이상이다. 대부분의 제조업에서 평균 가동률도 매우 낮다. 특히, 외자기업으로부터 오는 경쟁압력은 대단해 전자·통신장비부문에서는 외자기업의 점유율이 60%나 되고 섬유·의복, 가죽·모피, 문방구·스포츠용품, 측정·과학기기 및 사무용품, 전자·통신장비 등 5개의 성장주도산업에서 외자기업의 시장점유율이 40%를 초과했다. 이리하여, 중국의 시장집중도는 한국이나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대다수의 업종에서 상위 4개사의 시장점유율이 20%에 미달한다.
다섯째, 거대한 경제규모와 특수한 중앙-지방간의 정치관계 등으로 인해 중국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식의 산업정책의 실시가 어렵다. 분권화 개혁이후 지역별 산업구조의 동조화와 중복투자 문제가 심각하다. 그 단적인 예가 자동차산업인데, 중국의 완성차 조립공장은 122여개소가 난립해 있고, 연산 10만대 이상을 생산하는 자동차공장이 5개소에 불과하다. 중국정부는 수차례 자동차공업의 난립상을 해소하려고 자동차공업에 대한 정리계획을 수립해 실천했으나 분권화가 다시 진행되면 순식간에 자동차공장이 다시 증가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