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3월2일] 케인스 경제학의 부활

경제학사상 지난 30년간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지난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이끌면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시대를 견인했다. 그 경제철학의 핵심은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Monetarist)에서 보듯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며 작동하지 않는 것은 정부다’는 명구에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시장만능주의 철학은 일대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그것도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로부터가 아니라 선진국들 내부에서 스스로 터져나오는 개혁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월가의 금융가나 미 워싱턴의 경제관료, 심지어 상아탑의 학자들조차 이제 정부의 시장개입을 더 이상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 은행 국유화, 기업 구제금융, 나아가 파생상품 거래의 규제와 은행감독 강화 등까지…. 살기 위해서라면 시장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물론 속옷마저 벗어 던질 기세다. 오로지 미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만이 신자유주의적 정치신념을 위한 지조(?)를 지키고 있다. 무엇이 이처럼 인류사상 최고의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이라던 자본주의에 대한 개조를 정당화시킨 것일까. 돌이켜보면 자본주의는 태동시부터 시장만으로는 작동하지 않았고 그 반대편에는 항상 정부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면 ‘보이는 손’도 있었던 셈이다. 경쟁원리에 의한 자유방임은 성장을 촉진하는 원동력이긴 하나 그 성장의 거품은 특정 시장가치를 과도하게 부풀리고 투기를 조장해 언젠가 시장 전체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돼 돌아왔다. J M 케인스는 이런 시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한 경제학자였다. 그는 일찍이 폐허에 이른 자본주의를 구제할 유일한 방책으로 정부를 거론했다. 정부는 망가진 시장이 스스로 작동하지 못할 때 시장에 개입해 이를 재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때 정부는 충분히 객관적이고 건전한 가치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의 이런 경제철학은 이미 미국의 뉴딜정책에 반영됐고 특히 2차대전 후 세계경제를 복구하는 데 기여했다. 선진국들뿐 아니라 개도국들까지도 케인스의 철학을 좇아서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했다. 당연히 일부에서는 이런 정책을 사회주의적이라 비판했다. 실제로 케인스의 철학은 공산주의식 계획경제와 자본주의적 자유방임의 중간에 있었다. 이제 그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어느 나라도 케인스를 거론하지 않지만 그들이 하는 경제정책은 이미 케인스적(Keynesia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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