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앞길에 또다시 유령처럼 나타났다. 지난 4월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미국산 쇠고기는 협상의제도 아니면서 마지막까지 양측 협상단을 괴롭혔다. 당시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에 성실히 임한다”는 구두약속으로 가까스로 양측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와 한미 FTA간의 함수관계를 잘 아는 정부는 검역 중단조치를 발표하면서 곧이어 “한미 FTA와 연계될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2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산 쇠고기 처리에 대한 관계장관회의에서 FTA 관련 얘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번 문제는 미국 측의 명백한 검역상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미국이 검역 중단조치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한미 FTA 비준과 연계해 압박을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당장 한미 FTA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정부 역시 ‘수입 중단’보다 약한 ‘검역 중단’조치를 내려 미측 입장도 배려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이 미뤄져 미 행정부가 의회에 한미 FTA 비준안을 제출해 처리를 요구하기는 어렵게 됐다. 미 상ㆍ하원의 유력 의원들도 여러 차례 “쇠고기 전면 개방 없이는 한미 FTA도 없다”고 말해왔다.
올 하반기 정기국회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제출, 통과시키려던 우리 정부의 계획 또한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측이 비준을 연기하는 상황에서 오는 12월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 국회가 적극적으로 처리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 보인다. 김원웅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은 “한미 FTA 청문회를 열어 협상 내용을 철저히 검증하겠지만 먼저 미 의회 상황을 봐가며 국회 처리 일정을 잡겠다”고 말했다.
결국 미 쇠고기 검역 중단은 ‘미 쇠고기 수입확대 연기’→‘미 의회 FTA 비준안 처리 연기’→‘한국 국회 FTA 비준안 처리 지연’이라는 연쇄적 영향을 일으키며 한미 FTA의 발목을 또 한번 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