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현대중공업 노사에 따르면 노조가 전날 실시한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자 사측뿐 아니라 노조 집행부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사 잠정합의안 투표 결과 반대가 66%로 찬성(33%)보다 2배나 많다는 점에서 노사 모두에 상당한 압박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그만큼 조합원들의 기대치가 회사의 여력과 격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으로 재협상은 높아진 조합원들의 눈높이에 대해 과연 노조집행부가 어느 정도 수용할지와 회사 측이 또 양보할 것인지 아니면 극단으로 치달을 것인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노조는 지난해 4월17일 임금인상 요구안으로 기본급 13만2,013원(기본급 대비 6.51%) 인상을 요구했다. 현대중공업은 3·4분기까지 총 3조2,272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으나 호황기였던 2002년(13만8,912원)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인상안을 요구했다.
정병모 노조위원장도 "실리 노조 12년 동안 회사가 하자는 대로 해왔고 동종사와 현대차보다 임금을 적게 올려줘도 인내한 데 대해 올해는 보답해야 한다"는 등 매분기 수조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비교하며 조합원들의 기대치를 높였다.
조합원들은 지난 10여년 간 임금이 크게 오르지 못했다고 보고 이번에는 꼭 보상받겠다는 심리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조합원은 노조 게시판에 "1997년 회사가 사상 최대 흑자를 냈지만 임금이 오르지 않았고 이후 매번 임금협상 때마다 수익금으로 잉여금을 남기고 자회사를 만들었다"며 "(이제는) 회사로부터 받아 챙길 수 있을 때 챙겨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부 현장조직이 조직적인 부결 운동을 펼치면서 노사가 200일 넘게 얼굴을 맞대고 내놓은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
또 그룹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이 1차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뒤 좀 더 나은 조건의 2차 잠정합의안을 받은 데 대한 막연한 기대감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더 내놓을 것이 없는 입장이어서 재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이달 중 노조대의원 선거가 있어 재협상 일정에 대해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정 위원장은 "잠정합의안에 대한 선택은 조합원 여러분이 하는 것인 만큼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부결되면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혀 노사 관계가 크게 악화될 우려를 낳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12월31일 71차 교섭에서 기본급 대비 2%인 3만7,000원(호봉승급분 2만3,000원 포함) 인상, 격려금 150%(주식 지급)+200만원 지급, 직무환경수당 1만원 인상, 상품권(20만원) 지급, 상여금 700%를 통상임금에 포함, 특별휴무(2015년 2월 23일) 등에 합의했다.
정년연장과 관련해서는 2015년 1월부터 정년을 60세로 확정하되 임금 삭감 폭을 줄이기로 했으며 사내 근로복지기금 30억원 출연, 노동조합 휴양소 건립기금 20억원 출연안 등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