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선비 심노숭이 바라본 조선후기 사대부 일상

■ 자저실기

심노숭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몸은 깡마르고 허약하며, 키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작다. 등은 구부정하게 불룩 솟았고, 배는 펑퍼짐하게 아래로 처졌다. 어려서는 옷을 가누지 못할 만큼 허약해서 혼담을 하러 온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 혼사를 물렸다. 요절할 관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본문 '나의 몸' 중에서>

조선 정조~순조 때 문신이자 학자였던 효전(孝田) 심노숭(1762~1837)이 쓴 '효전산고'에 실린 내용을 한글로 옮긴 책이다. '자저실기'는 '자신이 직접 쓴 신상 기록'이란 의미로, 자신의 용모와 기질, 예술, 현실 정치와 사회상, 동시대 사대부의 삶에 대해 적고 있다. 영·정조 때 노론 시파의 핵심이었던 심낙수의 아들로 명문가 선비였던 심노숭의 글은 문학적 수준이 높고 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지만 대부분의 책이 번역되지 못해 후대에는 소개되지 못했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고풍스러운 시문보다는 수필 스타일의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던 심노숭은 자신의 일상과 시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과거의 풍속 등을 세밀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인생에서 특별한 일을 겪을 때마다 붓을 들어 기록을 남겼지만 후대의 평가를 의식한 자기검열은 찾아볼 수 없다. 일상생활 속 치부와 솔직한 감정 그대로를 오롯이 글로 옮겼다. 정욕이 남보다 지나쳐 패가망신할 뻔한 소싯적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고백하는가 하면, 심한 결벽증으로 어른들에게 매번 꾸짖음을 당했다고 적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겪은 일뿐만 아니라 보고 들은 것을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해 문집 '효전산고'를 비롯해 유배지에서 기록한 '남천일록' 20권, '산해필희'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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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주관이 유달리 뚜렷했던 그는 조선 후기 지배층 사회의 심층부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기도 했다. 객관적인 시각을 내 세기우보다 직접 목격한 장면을 상세히 옮기는 방식을 취했는데, 홍국영, 김종수, 심환지, 김귀주, 이율, 송덕상 등 한 시대를 쥐락펴락했던 정객의 실체가 어떠했는지 비판하고 폭로하는 글에선 증오가 느껴질 정도다.

아울러 길거리에 굶주려 쓰러진 지방 지식인의 참상이나 근친상간과 화간 등 성적으로 문란한 명문가 관료들의 이야기, 권력과 재물에 눈이 먼 양반의 황폐한 인간상에 대해서도 여과 없이 묘사하고 있다.

'자저실기'는 당대 지식인 사회와 정치판의 어두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 시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3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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