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6월 8일]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

지난 토요일 저녁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니 7살 된 우리 아들이 또래 아이들과 기둥 타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밥을 일찍 먹은 아들이 나간 지는 불과 10분 정도. 그 사이에 아이들은 비스듬히 설치된 기둥을 누가 빨리 올라가나, 올라가서 누가 오래 버티나로 시합을 하기로 합의 본 뒤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출전 순서는 나이 적은 사람부터였다. 10살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들이 10분 만에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규칙 안에서 누가 제일 잘하는지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요즘 노동 분야에서 가장 급한 현안은 쌍용차 구조조정이다. 현안 해결을 위해 지난 5일 열린 노사정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이 합의한 것은 대화다. 정리해고일인 8일까지 상생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대화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동안 노사는 도대체 뭘 했기에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이제야 비로소 대화하기로 한 걸까. 그 숱한 세월에 걸쳐 겨우 대화하기로 합의한 사람들이 3일 동안 상생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가장 시급한 문제가 쌍용차라면 가장 중요한 이슈는 비정규직법 개정안 처리다. 다음달부터 비정규직의 2년 고용제한 규정이 시행되면 많은 비정규직들이 고용위기를 맞는다.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라하다. 한나라당은 야당과의 대화를 통한 합의처리를 강조하며 상임위에 개정안 상정부터 하라고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대화는 대화할 준비가 있어야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아직 자기들의 당론도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고용제한 규정을 그대로 시행할 것을 주장하며 여당이 토론회 등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대화의 틀인 상임위 상정은 반대하면서 대화하자는 자가당착을 이해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4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노동부는 이후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 공은 국회에 넘어갔으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태도다. 노동부의 주장대로라면 개정안 처리가 되지 않을 경우 야당 추산보다 20만명이 더 많은 70만명의 비정규직이 고용위기로 내몰린다. ‘해고되면 실업급여 타면 된다’는 노동부의 수수방관과 무책임한 자세 역시 비판 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아이의 순수함을 잃는다고 얘기한다. 요즘 노동 현안을 생각하면 그것만 잃으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어른들은 대화하는 방법도 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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