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에 대한 오해와 진실<br>사자보다 힘세 싸우면 승산 높아<br>에버랜드 백호 사파리 황호 입주<br>세계 최초 평화적 공존할지 관심<br>신진대사 위해 식물도 섭취
| 에버랜드의 정상조 사육사가 백호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사진=에버랜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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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인(庚寅)년 새해는 ‘범띠 해’다. 특히 내년은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백(白)호랑이띠의 해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이다. 육당 최남선은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처럼 조선에서 가장 신성한 동물로 첫째 가는 것이 호랑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랑이 이야기만으로도 ‘천일야화’나 ‘데카메론’과 같은 책을 꾸밀 수 있을 정도”라며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 칭하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에는 유독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같은 얘기들이 많이 등장하곤 했다.
호랑이를 향한 우리 민족의 오랜 짝사랑은 현재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도 ‘호돌이’였으며 2001년부터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축구팀의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를 대신해 호랑이 문양이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살아 숨쉬어 왔다. 그런데 우리가 호랑이를 짝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과연 호랑이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20년간 호랑이와 동고동락해 에버랜드의 ‘호랑이 아빠’로 불리는 정상조(48) 사육사는 “부지런하면서도 강인한 성격을 지닌 호랑이는 한국 사람들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동물”이라며 “특히 싸워야할 땐 가장 용맹스럽게 싸우면서도 화합을 잘하는 호랑이의 습성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설명한다. 호랑이의 해를 맞아 정 사육사의 입을 통해 호랑이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풀어봤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서로 ‘맹수의 제왕’을 자처하는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무리 생활을 하는 사자에 비해 단독 생활을 하는 호랑이가 불리할 수밖에 없지만 일대일 대결에선 호랑이가 이긴다는게 정 사육사의 답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사자는 무리 중 한 마리가 공격을 당하면 함께 협공을 펼치지만 도무지 뭉칠 줄 모르는 호랑이들은 동생이 사자에게 공격을 당해도 형이 모른척할 정도라는 것.
하지만 싸움의 기술이나 활동성, 체구관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호랑이가 다른 맹수들을 압도한다고 정 사육사는 설명한다. 호랑이 앞발의 펀치력은 무려 800kg의 무게에 버금가는 위력을 자랑하며 달리기 실력 또한 시속 70km 이상을 넘는다고 한다. 눈깜짝할 새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 한 방에 쓰러뜨리는 기술은 호랑이의 주무기. 물론 호랑이와 사자가 맞닥뜨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사육 시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시아 지역의 삼림이나 갈대밭 등에 주로 서식하는 호랑이와 아프리카 초원이 고향인 사자는 실제로 야생 상태에서는 만날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옛말에 ‘호랑이는 아무리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호랑이는 홀로 살아가는 육식 동물이기에 자신의 의지대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비의 강직한 품성을 곧잘 호랑이에 빗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라고 한다. 정 사육사는 “호랑이는 기본적으로 육식을 좋아하지만 소화나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겨 채식이 필요할 경우 스스로 나뭇잎을 먹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평소엔 즐겨 먹지 않는 풀이 때로는 속이 좋지 않은 호랑이에게 소화제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는 따뜻한 가죽 덕분에 추위를 전혀 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틀린 얘기다. 호랑이는 추운 겨울을 대비해 여름부터 이른 가을까지 털갈이를 한다. 이때 마치 사람이 내복 입듯이 호랑이에도 잔털이 많이 생겨나기 때문에 추위에 견딜 수 있는 것. 또 겨울을 앞두고는 지방을 늘리기 위해 먹이를 평소보다 많이 먹어두는 것도 호랑이의 겨울나기 비법이다.
호랑이의 연애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궁금증이다. 야생 상태의 암컷 호랑이는 발정이 왔을 때 울음소리로 수컷을 불러 짝짓기를 시도한다. 반면 사육 상태에서는 암컷이 발정이 오면 수컷에게 다가가 재롱을 피워 호감을 얻고 난 뒤 짝짓기에 성공한다. 특히 호랑이는 항상 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기 위해 짝짓기 시간이 짧은 대신 하루 최고 30번 이상 교미를 하기도 한다. 평소 단독 생활을 하는 수컷 호랑이는 짝짓기철 외에는 암컷에게 호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사자나 다른 맹수처럼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나라에도 아직 야생 호랑이가 살아있을까.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한 마리가 사살된 이후 호랑이는 멸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이후로도 전국 각지에서는 끊임없이 호랑이를 봤다는 목격담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에 아직 국내에 야생 호랑이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정 사육사는 야생 호랑이의 생존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말한다. 그동안 수 차례 호랑이의 흔적을 봤다는 제보가 나올 때마다 그가 직접 현장에 나가 발자국을 비롯한 각종 증거물들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결국 멧돼지나 다른 들짐승으로 판정났다고 한다.
내년은 60년만의 백(白)호랑이띠 해인만큼 그 어느 때보다 백호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은 “2007년 정해년이 황금돼지띠라는 것은 근거가 없었지만 경인년의 경(庚)은 흰색과 서쪽, 금을 뜻하기 때문에 내년이 백호랑이띠라는 얘기는 맞다”고 말한다.
백호는 황갈색을 띤 보통 호랑이와 달리 흰털 바탕에 초콜릿색의 줄무늬를 띄는 것이 특징이다. 백호의 눈은 푸른색, 코는 분홍색으로 갈색 눈과 검정색 코를 가진 일반 호랑이와 확연히 구분된다.
예로부터 백호는 영물로 신성시돼온 동물이다. 중국 설화에서는 청룡(靑龍), 주작(朱雀), 현무(玄 武) 등과 함께 하늘의 사신(四神)을 이룬다. 이 상상의 동물이 1951년 현실로 나타났다. 히말라야에서 백호 수컷이 발견된 것이다. 그후 벵골호랑이와 짝을 맺어 유전자(DNA)를 퍼뜨렸다. 백호의 유전인자는 보통 황색 호랑이에 비해 열성이다. 멘델의 유전법칙에 따라 황색의 우성인자만 가진 호랑이들 사이에선 백호가 태어날 수 없지만 각각 흰색의 열성인자를 보유한 암수 황색 호랑이에선 25%의 확률로 백호가 태어날 수 있다.
예로부터 영험한 동물로 통했던 만큼 백호를 보면 직장운이나 고시운이 트인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다. 정 사육사는 “국내 동물원에 백호가 처음 사육되던 시절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촌로들이 백호 우리 앞에 넙죽 엎드려 절하며 소원을 비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국내에 백호가 처음 들어온 것은 지난 1990년 10월.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과 오하마 동물원에서 각각 암수 1쌍과 수컷 1마리가 당시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도입되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5번째 백호 보유국이 됐다. 현재 전세계 백호는 국내에서 사육중인 14마리를 포함해 200여마리에 불과하며 안타깝게도 야생 상태의 백호는 모두 멸종됐다.
백호는 일반적으로 황색 호랑이에 비해 성질이 온순해 웬만해선 먼저 상대방을 공격을 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다툼이 발생하면 먼저 나서 화해를 주선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지난 2005년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백호중 한 마리는 ‘평화’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백호는 황색 호랑이와 달리 잘 뭉친다. 다른 맹수들에 비해 형제간의 우애도 가장 두텁다. 하지만 백호는 반드시 싸워야 할 때에는 결코 물러섬이 없는 특유의 용맹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실제로 지난 11월 에버랜드 ‘백호 사파리’ 내에서는 발정난 사자가 백호 영역을 침범했다가 백호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정 사육사는 오는 28일 백호 사파리에 새로 입주할 손님 맞이에 분주하다. 현재 백호와 사자가 함께 머무는 백호 사파리 내에 사자가 이주하는 대신 황호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백호와 황호가 한 울타리에 사는 것은 세계 최초로 서로 다른 성격의 호랑이들이 ‘평화로운 동거’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