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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부실 등 문제가 생깁니다. 모든 분야에서 원칙이 통용되는 KB를 만들겠습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명동 KB지주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을 바탕으로 지금까지의 불합리한 관행은 바꿔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박한 금융지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의 금융 시스템에 대해서는 "월가의 일방적인 논리에 속지 말자"고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1등 KB' 복귀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 어 회장은 "경쟁력 있는 체질을 만들기까지 2년가량 필요하다"며 메가뱅크를 겨냥한 은행 간 M&A에 나설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혔다.
-취임 한 달을 맞으셨습니다. 밖에서 볼 때의 KB와 안에서 직접 점검하며 확인한 KB는 다를 것 같은데요.
▦상당히 허술하더군요. 이것저것 챙겨보니 고칠 필요가 있는 것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취임에 앞서 보고를 받으면서 그때그때 개선과제를 제시했는데 나중에 보니 120개나 되더군요. 이 가운데 제가 잘못 판단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이 과제들을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해 개선 가능성 여부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장점도 보이더군요. KB는 집행력이 좋습니다. 새 행장을 모신 후 곧바로 조직 구조조정을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을 보십시오. 직원들의 조직에 대한 로열티도 상당히 높습니다. 잘될 수밖에 없는 조직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집행력도 좋고 로열티도 높다면 결국은 리더십 또는 경영전략의 방향성이 문제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만.
▦잘못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겠네요(자칫 전임자 깎아내리기로 비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이었다). 그것보다는 원칙의 문제이자 운영철학의 문제라고 봅니다.
KB도 최근 1~2년 사이 선물거래를 하다가 손실을 많이 봤습니다. 근데 선물거래라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대출행위와 바탕이 같습니다. 대출할 때는 부실발생을 축소시키기 위해 근저당 설정 등 보완조치를 취하지 않습니까. 선물거래에서도 위험을 축소시키는 안전장치가 필요한데 KB의 선물거래를 살펴보니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아예 보이지 않더군요. 거래 자체를 이해할 수 없어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답변이 가관이었습니다. 다른 은행도 별다른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기에 KB도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KB 스스로의 판단원칙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은행의 볼륨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보니 나온 부작용은 아닐까요.
▦금융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리 경쟁이 치열해도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부실이 발생하기 마련이지요.
국민은행의 고객은 2,600만명입니다. 활동고객만 해도 무려 1,300만명이나 됩니다. 이들은 모두 상당히 우량한 고객입니다. 최근의 부실은 기존 거래고객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반면 지난 3년간 자산을 늘리려고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좋지 않은 건설·조선 고객을 데려왔다가 이번에 대규모 부실이 생겼습니다. 금융의 원칙을 지켰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금융에 대한 모럴이나 문화의 문제로도 읽힙니다.
▦그렇지요. KB에는 직원들의 성과를 측정하는 KPI(Key Performance index)가 있는데 오후7시 이후에 직원 컴퓨터가 켜져 있으면 감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도대체 늦게까지 일하는 게 어떻게 감점요소가 될 수 있습니까. 글로벌 증권사들을 보면 매일 밤11시나 12시까지 일을 합니다. 그렇게 일하고 급여는 (우리 금융사보다) 두 배 이상 받습니다. 단순히 시간을 정해놓고 이후에는 일하지 마라, 이런 거는 어떤 원칙인지 궁금합니다.
이미 드러난 사실이지만 지난해 은행 경영이 어려웠는데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평가에서 A등급 이상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내부적으로 제대로 된 원칙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좋은 내부기준이나 잣대가 있어도 이를 얼마나 현명하게 운영하느냐라는 '운영자의 자질' 문제이기도 하고요.
- 우리금융을 인수하지 않겠다고 밝히셨지만 어쨌든 메가뱅크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메가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 듯합니다.
흔히들 미국 은행을 예로 들면서 메가뱅크론에 반발합니다만 미국같이 국토가 넓은 나라의 금융발달사를 고려해야 합니다. 반면 유럽계 금융사들을 살펴보면 다를 것입니다. UBS의 자산은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300% 수준이고 영국과 프랑스 등의 은행 자산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이 정도 규모는 돼야 해외시장에서 금융활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역사적 바탕이나 문화적 동질성 등이 작동하지만 규모가 주는 신뢰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명도의 문제도 있습니다. 자산규모에서든 인지도에서든 은행 이름이 리그테이블 상위에 올라 있어야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 공상은행을 볼까요. 은행 경쟁력 부문에서 우리보다 못하겠지만 글로벌 무대에서는 국내 여타 은행보다 훨씬 더 신뢰를 받습니다. 볼륨이나 인지도 등이 작동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국내에는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메가뱅크가 없습니다. 국민은행이 고작 GDP 대비 24% 정도 수준이니까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앞으로 한국의 글로벌 금융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야기지요.
-한국의 메가뱅크 역할을 겨냥해서라도 KB금융이 인수합병(M&A) 시장에 적극 나서 몸집을 키우는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들립니다만.
▦몸살이 나서 발걸음조차 옮기기 힘든데 100m 달리기에 나설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지금 KB의 실태가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내부 체질을 개선시켜 경쟁력을 되살리기까지 한 2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봅니다. 아까 말씀 드렸듯이 원칙을 제대로 정립하고 허술한 부분을 단단하게 만들어 은행 각 부문의 경쟁력을 높여놓는 것이 지금 가장 우선되는 목표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 자신이 생기면 그때 나설 수 있겠지요. 물론 그 사이에 은행이 아닌 비은행 영역에서의 소소한 M&A는 진행시킬 것입니다.
-화제를 돌려볼까요. 글로벌 경제흐름이 상당히 불안정해 보입니다. 더블딥 이야기도 나오고요.
▦지난번 서울포럼에서 마크 펠트스타인이 말하더군요. 더블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국제적인 석학이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 맞는다고 봐야겠지요.
관건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문제인데요. 우리 상황을 다시 생각해봅시다. 한국은 글로벌 자금이 볼 때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적당히 헤지를 할 수 있는 수단도 있고 시장 규모도 일정 수준 이상이고요. 글로벌 투자가들이 우리 시장에서 자금을 굴리고 조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시장을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아직도 외화 미스매치가 발생하면 무조건 외국에서 돈을 빌려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관행적으로 환헤지도 하고요. 단발적인 거래라면 헤지가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거래를 꾸준히 이어간다면 헤지는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한국 금융기관의 환헤지 관행은 길게 보면 필요 없는 보험일 수 있지요.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헤지 비용을 치르는 것은 외국 금융기관의 논리에 놀아나기 때문입니다.
CDS를 볼까요. 우리가 이 상품을 사면 지구 반대편 브라질쯤에서는 이 상품을 팔고 있습니다. 그래야 시장이 균형을 잡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이익은 씨티 등 글로벌 금융사가 아무 리스크 없이 모두 챙겨갑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계 금융기관의 수익원 가운데 큰 부분이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비즈니스입니다. 돈을 빌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관행적으로 외화를 빌려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격입니다. 월가의 논리에 눈을 떠야지요.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KB가 할 일이 있겠군요
▦우리나라만큼 해외 투자가들이 선호하는 시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시장과 금융기관에 자기들이 돈이 남을 때 투자와 대출을 해줍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힘들 때는 가장 먼저 회수합니다. 한국만큼 투자금과 대출 회수가 손쉬운 나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행 입장에서는 빌려온 외화가 많으면 한번에 대출상환 요구가 몰리기 때문에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개인의 '외화자산 갖기 캠페인'을 해볼 생각입니다. 한 500억달러 정도 시중은행이 갖고 있다면 우리나라에 외화유동성 문제가 생길 때 은행들이 달러를 공급해주면 됩니다.
현재 한국은행은 2,800억달러 이상의 달러를 갖고 있어 운용하는 데 부담스럽습니다. 국민들이 모두 외화자산을 보유해 부담을 나눠 갖는다면 국내 모든 은행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씩은 오를 겁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최근 서민금융이 가장 큰 화두입니다. 사회에서는 은행에 바라는 부분이 많은데요
▦우선 캐피털사의 고금리를 말하는데 이익이 많다는 것은 리스크 테이킹을 한다는 것입니다. 리스크가 매년 나타나는 게 아니라 6~7년에 한번 정도 생기는데 이럴 때마다 사회적 비용으로 손실을 메워주기 때문에 이 같은 논란이 생깁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평등의식이 높고 은행의 공익적 측면에 대한 요구가 큽니다. 하지만 서민지원은 사회구조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합니다. 스웨덴처럼 세금을 높여 복지에 투입할 것이냐 아니면 세금을 낮춰 개인소득을 늘려줄 것이냐는 결국 철학의 문제입니다. 은행 또한 수익도 많이 내야 하고 서민지원도 해야 합니다.
"할수 있는것 많지 않아…美 더블딥 없기만 바라야" 개발사업자들 탐욕이 화근 금융사도 일부 원인 제공 시간 벌어주는 것 외엔 정부도 마땅한 방법없어 "미국이 더블딥(이중침체)으로 가지 않기만을 바라야지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해법을 묻자 어윤대 회장이 내놓은 대답이다. 미국경제가 다시 침체되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경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다는 논리다. 이 경우 국내소비가 위축되고 부동산시장 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천수답(天水畓)식 방안이다. 뒤집어보면 금융전문가인 어 회장도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시인할 만큼 PF 문제 해결이 간단치 않다는 얘기다. 어 회장은 "부동산과 PF 문제로 정부가 출구전략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로서는) 시간을 다소 벌어주는 것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PF 문제에 대해 그는 개발사업자들의 탐욕을 지적했다.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는 지역에까지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지어놓고 분양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어 회장은 "사업성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PF로 건물을 지은 것 자체가 근본원인이었다"며 "미국도 주택을 무차별적으로 지어 공급하다가 문제가 생겼다"고 강조했다. 금융사들의 리스크 관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 회장은 "금융사들도 사업건별로 꼼꼼히 따져 대출을 했어야 하는데 분위기에 휩쓸린 감이 없지 않다"며 "PF 문제를 키우는 데 일정 부분 원인제공을 했다"고 말했다. 어 회장은 이어 "현재 국민은행의 PF 대출 사업장 현황을 재점검하고 있다"며 "대출심사와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은행은 지난 2008년 말 12조원에 달했던 PF 잔액을 올 들어 7조원대까지 줄인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