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지역 전화회사인 유에스 웨스트(US WEST)를 둘러싼 통신업체들간의 인수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특히 이번 인수전은 그동안 기술혁신을 무기로 기존의 전화회사를 장악하며 승승장구해 오던 신흥 세력과 기존 세력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매수전의 발단은 지난 5월 케이블업체인 글로벌 크로싱(GC)이 AT&T로부터 분리 독립한 유에스 웨스트와 대등 합병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세계를 해저 케이블로 연결하는 통신인프라 회사인 GC는 이미 지난 3월 중견 장거리회사인 프론티어와 인수협상을 벌이고 있어 3개사가 대통합을 이루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신흥기업인 퀘스트가 지난달 13일 전격적으로 US 웨스트와 프론티어에 대한 적대적 매수 방침을 밝히면서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퀘스트의 죠셉 나치오 회장은 AT&T 출신으로 차기 회장에 거론되기도 했던 인물. 그는 로버트 아렌 회장과의 불화로 97년 퀘스트로 옮긴 후 AT&T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제 나치오 회장은 과거의 직장인 AT&T로 복귀하기 위해 이번 인수전에 적극 뛰어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유에스 웨스트는 지난 21일 이사회에서 퀘스트의 인수 제의를 거부하고 GC와의 인수협상을 지속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퀘스트의 나치오 회장은 22일 이와관련 『유에스 웨스트의 결정은 주주, 종업원, 고객 모두의 이익에 손상을 가하는 것』이라는 비난성 편지를 유에스 웨스트 대주주들에게 보내는 등 인수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한편 통신업계의 차세대 기수로 촉망받던 퀘스트가 이번 유에스 웨스트 인수전에서 고전함에 따라 통신업계의 신구 세력간 판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신흥 세력인 퀘스트가 외부의 주목을 끌며 매출액(22억달러)에 비해 높은 시가총액(256억달러)을 보이고 있는 것은 「탈(脫)전화시대의 새로운 통신회사 모델」로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즉 영상이나 음성이 네트워크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네트워크 사회는 음성만 전달하는 전화시대에 비해 훨씬 큰 용량의 통신전달수단을 필요로 한다. 신흥 퀘스트는 이러한 수요에 부흥해 대용량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보다 싼 가격에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통신업계의 총아로 급부상한 것이다. 반면 AT&T로 대표되는 구세력은 통신용량 경쟁이나 요금체계의 쇄신면에서 뒤쳐져 점차 신흥세력에 시장을 침식당해 왔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구세력의 대표격인 AT&T는 발빠르게 CATV를 매수하는 등 그동안의 보수적인 경영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있다.
더우기 기술혁신에 의해 광케이블 선을 이용한 통신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조만간 통신용량의 과잉시대가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통신선 이용료가 제로에 가까와지면 통신 인프라는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는 일용품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구세력이 오랫동안 공들여 키워 온 거대한 고객기반의 가치는 점차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향후 전자상거래 등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의 승패는 결국 사용자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2,000만명에 가까운 회원이 유일한 자산인 아메리카 온라인이 단기간에 네트워크 기업 가운데 선두자리를 차지한 것도 이같은 매력 때문이다.
지난 84년 AT&T로부터 분리돼 2,5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유에스 웨스트는 구세력의 대표격이다. 유에스 웨스트의 경영진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형태로 GC와의 합병이 진행될지 아니면 퀘스트가 점령할지 통신업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형주 기자 LHJ303@SED.CO.KR